오늘은 모임이 꽤 여럿있어서인지 심적으로 부담감이 컸던 하루였다. 먼저 점심때 10층의 지저분하게 널려있는 랜선 절단식을 가지기로 하였다. 청원정보의 박과장님과 함께 작업하기로 하였고 금액은 그리 많이 주지는 못할 것 같다고 이야기 하였다.
점심시간이 되기전에 이미 공지를 하였기 때문에 열두시 정도에 10층으로 올라갔다. 힘쓸 남자들이 별로(?)없는 교육원이기에 애초부터 둘이 작업하기로 약속을 한터였다.
들어서자마자 인터넷 선의 위치를 확인하고 전화선과 물려져 있는 저것들을 어떻게 잘 처리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면서 일을 시작한다.
모두 책꽃이 뒤로 숨겨져 있는 터라 숨겨져 있는 랜선을 끄집어 내고 전화선을 유지하면서 랜선만 잘라내는 일이 쉽지많은 않았다. 그동안 쌓여있던 피로를 다 풀어내더라도 이시간에 해낸만큼의 피로만큼도 되지 않은듯 노동을 했나보다. 그리고 예정대로 비밀번호를 AP 에 넣고 무선네트ㅤㅇㅝㅋ을 구축하였다. 이제 깔끔한 10층의 모습을 미처 확인하기도 전에 벌써 두시가 다가왔으므로 국내평화단체 모임을 준비하였다. 지난번 회의때 장소를 유네스코회관으로 하자고 해서 미리 예약을 하여 잡아놓았다.
기본적인 책상배치와 프리젠테이션 준비를 마친 후 점심을 먹지 않은 여파를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은 헝그리 정신때의 기억때문이다. 배부르지 않아 견디어낼 수 있는 용기와 젊음이 살아 용광로처럼 끓었던 그 시절의 모습을 기억해 내느라 시간이 걸렸을 뿐 허기짐이 마인드를 점령하진 못했다.
모임을 마치고 박,곽선생님과 대청마루에서 저녁을 먹었다.
글구 종일주차를 해놓았던 곳으로 발길을 향한 후 늘 어깨에 메고 다니던 사운드워크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마 회의실에 그냥 놓고 온 것 같다. 회의가 끝난 후 급히 나오느라...정신을 못차리고...글구 이참에 10층에는 더 이상 필요없을 팩스기를 이천으로 옮긴다고 생각하며 명동입구에 차를 끌고 다시 들어섰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이곳은 비좁기도 하지만 늘 활기에 넘치는 곳이다.
회관앞에 잠깐 주차를 하기위해 차를 세워놓았을때쯤이었다. 길 건너편에서 신발장사를 하고 있는 젊은친구가 다가오더니 이곳에 주차를 하지 말라고 명령(?)비슷하게 한다. "여기주차하시면 안돼요" "여기 회관에서 일하는 사람이오. 잠깐 오분이면 되요. 올라갔다오는데..." 몇번 이런 말을 주고 받다가 싸가지가 없는 말을 하길래 무시하고 10층을 얼른 갔다가 내려온다. 글구 팩스기를 차에 싣고 내속에 존재하는 자존심이 다시 불끈 ㅤㅅㅗㄷ아나와 그 친구에게 가서 따지듯이 말한다. 여기 전세냈느냐는 말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내게 감정적인 대응을 한다. 글구 그 주변 족속들이 몰려와 위협을 하며 밀친다. 만약 내가 거기에 대응할만한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면 (아니 싸움에 능수능란한 것을 경험해왔다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상황이었다...) 아마도 그날 어느 한곳은 성치못했을 것이다. 둘 중 하나는...
그런데 도통 싸울줄 모르는 아니 한번도 격투처럼 힘으로 싸워본적이 없는 나이며 싸움자체를 싫어하는 나는 말외에는 아무 대응을 하지 않는다.
이 친구나 그 무리들이 이렇게 감정적으로 무식한 대응을 하는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할 겨를도 없다. 그런데 회관앞쪽에서 같이 장사하시던 분이 다가와 자초지정을 이야기 해준다. 한 시간전에 똑같이 나와같이 그 앞에 주차했던 사람이 있었단다. 그런데 그 주차로 인해 한쪽길을 지나가던 택시가 그만 그 신발파는 곳에 신발을 신어보던 사람을 치여 바로 앞 경찰서에서 실랑이를 벌이다 온 관계로 지금도 신경이 날카로와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일단 미안하다하고 사과했으며 몇명의 그 친구들 집단에 의해 밀쳐짐을 당하면서 잠시 구겨졌던 자존심인지가 내버려졌다. 그리고는 서로 악수하며 그래도 어색치 않고 웃으며 헤어졌다. 신발이 얼마냐고 물어보니 만원정도 한다고 한다. 그러면 내가 언제 한번 신발사러 오겠다고...
갑자기 자괴감이 몰려온다. 운전을 하면서 다리가 떨려온다. 사소한 일이지만 이런일들이 발생했을때 그것을 중재해 나가는 과정이 평화의 과정일것 같다. 그런데 이런 일상속에서의 평화가 실현되지 않고 있는데 내 스스로가 통일과 평화라고 명명지은 곳에서 일하고 있으며 또한 평화관련 NGO와 함께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지금 난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잠깐동안이었지만 폭력이 벌어지는 순간직전까지 갔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억울한 상황들을 당했을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그리고 곰곰히 뒤돌아본다. 결국 회관바로 앞에 주차를 시키는 행위는 서로의 이익에 관련되어 있다. 즉, 그 장사하는 사람입장에서는 앞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어야 안전하게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길을 사로잡아 신발을 팔 수 있다. 내 입장에서는 그 회관을 멀리 벗어나지 않는 것이 물건을 실을때 편리하다. 그 이익과 편리함의 줄다리기에서 내가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 더욱 내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생각의 우둔함이 심장과 다리를 두들겨 온다.
떨리는 심장과 다리를 안정시키고 다음 모임장소로 이동한다. 피스넷...
정보통신정책의 숨은 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는 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만나서 의사소통하는 것은 종종 기쁨을 안겨주는 요소이다. 그동안 내가 바라보았던 좁은 시각의 논점들을 솎아내며 대충 굵직한 요소들에 대한 예리한 배경설명을 빼놓지 않는 전응휘 선생님의 의견에는 항상 토를 달수가 없다. (핸드폰규제정책문제, 디지털저작권문제,타블렛노트북사용,홈네트워킹구현에 따른 사업망 지배자의 흐름) 이런 문제들에 대해 먹으며 토론한다.
오랫만이었지만 이런 모임이 내겐 좋다. 같은 마인드와 주제를 갖고 움직이므로 항상 이속에는 동족의 숨결이 흐른다. 다른곳에서 회의할때마다 소리없이 들려오는 듯한 이방인 취급은 이곳에서는 다 해소된다. 적어도 비슷한 영역의 사람들과 모임을 하므로
하루를 마무리 한다.
자신의 자존감과 이익이 무시되어질때 진정한 양보와 평화의 가치는 무엇인가 생각해보는 하루다. 아이들의 웃음속에는 적어도 그런 꾸밈없는 평화가 아래 사진들을 보다보면 느껴진다.











곽샘께서 잠깐 우리집에 들렸었다. 집주위를 둘러보고 혹시나 괜찮은지 한번 보시겠다고...요즘에 서울 가까운곳에 리안이랑 둘이 같이 살집을 물색하고 다니신다. Photo by 세희
점심시간이 되기전에 이미 공지를 하였기 때문에 열두시 정도에 10층으로 올라갔다. 힘쓸 남자들이 별로(?)없는 교육원이기에 애초부터 둘이 작업하기로 약속을 한터였다.
들어서자마자 인터넷 선의 위치를 확인하고 전화선과 물려져 있는 저것들을 어떻게 잘 처리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면서 일을 시작한다.
모두 책꽃이 뒤로 숨겨져 있는 터라 숨겨져 있는 랜선을 끄집어 내고 전화선을 유지하면서 랜선만 잘라내는 일이 쉽지많은 않았다. 그동안 쌓여있던 피로를 다 풀어내더라도 이시간에 해낸만큼의 피로만큼도 되지 않은듯 노동을 했나보다. 그리고 예정대로 비밀번호를 AP 에 넣고 무선네트ㅤㅇㅝㅋ을 구축하였다. 이제 깔끔한 10층의 모습을 미처 확인하기도 전에 벌써 두시가 다가왔으므로 국내평화단체 모임을 준비하였다. 지난번 회의때 장소를 유네스코회관으로 하자고 해서 미리 예약을 하여 잡아놓았다.
기본적인 책상배치와 프리젠테이션 준비를 마친 후 점심을 먹지 않은 여파를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은 헝그리 정신때의 기억때문이다. 배부르지 않아 견디어낼 수 있는 용기와 젊음이 살아 용광로처럼 끓었던 그 시절의 모습을 기억해 내느라 시간이 걸렸을 뿐 허기짐이 마인드를 점령하진 못했다.
모임을 마치고 박,곽선생님과 대청마루에서 저녁을 먹었다.
글구 종일주차를 해놓았던 곳으로 발길을 향한 후 늘 어깨에 메고 다니던 사운드워크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마 회의실에 그냥 놓고 온 것 같다. 회의가 끝난 후 급히 나오느라...정신을 못차리고...글구 이참에 10층에는 더 이상 필요없을 팩스기를 이천으로 옮긴다고 생각하며 명동입구에 차를 끌고 다시 들어섰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이곳은 비좁기도 하지만 늘 활기에 넘치는 곳이다.
회관앞에 잠깐 주차를 하기위해 차를 세워놓았을때쯤이었다. 길 건너편에서 신발장사를 하고 있는 젊은친구가 다가오더니 이곳에 주차를 하지 말라고 명령(?)비슷하게 한다. "여기주차하시면 안돼요" "여기 회관에서 일하는 사람이오. 잠깐 오분이면 되요. 올라갔다오는데..." 몇번 이런 말을 주고 받다가 싸가지가 없는 말을 하길래 무시하고 10층을 얼른 갔다가 내려온다. 글구 팩스기를 차에 싣고 내속에 존재하는 자존심이 다시 불끈 ㅤㅅㅗㄷ아나와 그 친구에게 가서 따지듯이 말한다. 여기 전세냈느냐는 말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내게 감정적인 대응을 한다. 글구 그 주변 족속들이 몰려와 위협을 하며 밀친다. 만약 내가 거기에 대응할만한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면 (아니 싸움에 능수능란한 것을 경험해왔다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상황이었다...) 아마도 그날 어느 한곳은 성치못했을 것이다. 둘 중 하나는...
그런데 도통 싸울줄 모르는 아니 한번도 격투처럼 힘으로 싸워본적이 없는 나이며 싸움자체를 싫어하는 나는 말외에는 아무 대응을 하지 않는다.
이 친구나 그 무리들이 이렇게 감정적으로 무식한 대응을 하는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할 겨를도 없다. 그런데 회관앞쪽에서 같이 장사하시던 분이 다가와 자초지정을 이야기 해준다. 한 시간전에 똑같이 나와같이 그 앞에 주차했던 사람이 있었단다. 그런데 그 주차로 인해 한쪽길을 지나가던 택시가 그만 그 신발파는 곳에 신발을 신어보던 사람을 치여 바로 앞 경찰서에서 실랑이를 벌이다 온 관계로 지금도 신경이 날카로와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일단 미안하다하고 사과했으며 몇명의 그 친구들 집단에 의해 밀쳐짐을 당하면서 잠시 구겨졌던 자존심인지가 내버려졌다. 그리고는 서로 악수하며 그래도 어색치 않고 웃으며 헤어졌다. 신발이 얼마냐고 물어보니 만원정도 한다고 한다. 그러면 내가 언제 한번 신발사러 오겠다고...
갑자기 자괴감이 몰려온다. 운전을 하면서 다리가 떨려온다. 사소한 일이지만 이런일들이 발생했을때 그것을 중재해 나가는 과정이 평화의 과정일것 같다. 그런데 이런 일상속에서의 평화가 실현되지 않고 있는데 내 스스로가 통일과 평화라고 명명지은 곳에서 일하고 있으며 또한 평화관련 NGO와 함께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지금 난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잠깐동안이었지만 폭력이 벌어지는 순간직전까지 갔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억울한 상황들을 당했을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그리고 곰곰히 뒤돌아본다. 결국 회관바로 앞에 주차를 시키는 행위는 서로의 이익에 관련되어 있다. 즉, 그 장사하는 사람입장에서는 앞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어야 안전하게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길을 사로잡아 신발을 팔 수 있다. 내 입장에서는 그 회관을 멀리 벗어나지 않는 것이 물건을 실을때 편리하다. 그 이익과 편리함의 줄다리기에서 내가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 더욱 내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생각의 우둔함이 심장과 다리를 두들겨 온다.
떨리는 심장과 다리를 안정시키고 다음 모임장소로 이동한다. 피스넷...
정보통신정책의 숨은 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는 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만나서 의사소통하는 것은 종종 기쁨을 안겨주는 요소이다. 그동안 내가 바라보았던 좁은 시각의 논점들을 솎아내며 대충 굵직한 요소들에 대한 예리한 배경설명을 빼놓지 않는 전응휘 선생님의 의견에는 항상 토를 달수가 없다. (핸드폰규제정책문제, 디지털저작권문제,타블렛노트북사용,홈네트워킹구현에 따른 사업망 지배자의 흐름) 이런 문제들에 대해 먹으며 토론한다.
오랫만이었지만 이런 모임이 내겐 좋다. 같은 마인드와 주제를 갖고 움직이므로 항상 이속에는 동족의 숨결이 흐른다. 다른곳에서 회의할때마다 소리없이 들려오는 듯한 이방인 취급은 이곳에서는 다 해소된다. 적어도 비슷한 영역의 사람들과 모임을 하므로
하루를 마무리 한다.
자신의 자존감과 이익이 무시되어질때 진정한 양보와 평화의 가치는 무엇인가 생각해보는 하루다. 아이들의 웃음속에는 적어도 그런 꾸밈없는 평화가 아래 사진들을 보다보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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