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종일 새로운 발상과 전환을 위한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며 너덜너덜한 가뿐한 마음으로 지하철로 향한다. 무엇인가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간다기보다는 벙어리 냉가슴 같은 심정으로 한치앞을 바라보는 듯하다. 

1. 부모란 무엇일까?

맞은편에 두 모녀가 있다. 엄마와 딸은 이어폰을 한귀에 하나씩 나누어 끼고 있으며 무엇인가 즐거운 음악을 듣고 있어 보인다. 얼굴에 비치는 광채는 아마도 두 사람이 나누고 있는 따뜻한 모녀의 정이 흐르기때문일 것이다. 이들이 주고 받는 시선은 정다움의 극치다. 잠시 후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너무도 쉽게 그 음악소리를 외면하면서 살아오는 현대인들중 한 사람인 나다. 가끔씩 그 음악 소리가 주머니로 옮겨 1,000원짜리 지폐 한장을 꺼내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날은 수중에 현금을 지니고 있지 않은 탓에 마음 한켠이 가벼웠다. 

정다운 얼굴로 서로를 돌아보던 그들 중 엄마는 듣고 있던 이어폰을 빼더니 자신의 지갑을 뒤져 1,000원짜리 지폐를 딸에게 건네준다.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그 딸은 불쌍한 몰골로 지나가는 할머니의 바구니에 1,000원의 자비를 베푼다. 

그때 느껴진다. 부모란 자신의 선행을 자식에게 배우게 하는 사람들이라고...그렇지 않은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 나라의 대통령은 만 백성의 아버지라 했는데 지금 그 부모라는 사람은 지나가는 할머니에게는 10원 한장 쓰기도 아까운 모양이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다음 정거장에서 두 모녀는 자취를 감춘다. 

2. 우정이란 무엇일까?

빈 자리 두 좌석을 새로운 인물들이 채운다. 그들은 비슷한 나이로 보였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미소는 두 모녀의 자취를 풍긴다. 두 여인은 즐거운 듯 샌드위치를 반반씩 쪼개어 나누어 먹고 있다. 지금 2호선의 풍경이다. 자꾸 그 둘 사이의 관계를 떠올리지만 동성으로써 주고 받는 우정이 두텁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계속되는 더운 날씨가 주는 긴장감도 있지만 이런 모습을 바라보자니 우선은 마음이 시원해진다. 

계속 답답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고자 할 때 느껴졌던 절망감들은 일상의 평화를 발견해 낼때만이 그 회복점에 이르는 것이라 생각해 본다. 

3. 추태란 무엇인가?

신도림에서 1호선을 갈아타려고 인천방향 플랫폼에 서 있다. 반대편 너머 인천,병점행 직행 플랫폼에 남녀가 서 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가 보다. 즐겁게 나누는 그 눈빛하며 몸을 서로 의지하는 수준이 높다. 

그러다가 나의 두 망막을 더럽히는 장면이 생겨 버린다. 그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는 아랑곳 없이 진한 키스를 나누는 모습이다. 둘이 은밀하게 즐길 것이지 반대편에서 감시하고 있는 사람의 기분은 생각해 주지 않고 둘이 서로 좋다고 그렇게 난리를 치다니 도저히 용서가 안된다. -_-;

지고 지순한 사랑과 순결한 사랑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들이 아무리 좋아도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배려하고 행동하는 연습이 덜 되어 있는 듯하다. 미숙하다.

사랑을 나누는 것은 좋다. 말릴 사람도 없다. 한나라당과 청와대가 밀월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좋은 일이겠지..그런데 그 둘 사이의 사랑은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추태를 보이는 두 남녀 관계와 같이 혼탁하다. 어지러운 세상만들고 용서 되지 않는 모습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그 밀월관계야 말로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다.  

소나무 끝에 매달려 있는 빗물자국을 떠올린다. 순결하다. 보는 이로 하여금 결합되어 공존하는 모습 자체가 보기에 심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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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Ik-Su : 비온 뒤 소나무 잎에 붙어 있는 물방울

그런 모습을 모녀의 사랑과 두 여자 친구의 모습에서 찾고 싶다. 그것이 유일한 희망일 듯 싶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곳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내일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벌써 7년이 흐른 듯 피은 7개월이 지났다. 4년만 참으면 해결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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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Iksu : 청계천에서 추석날 청계천을 따라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외국인 두남녀

* 추신 : 이곳에 사례의 사실을 바탕으로 정황 설명을 덧 붙였음을 밝힙니다. @_@;;
            또한 사진은 내용 흐름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08/09/18 02:46 2008/09/18 02:46
Posted by 길목


대학이란 낭만의 섬에서 친구들과 함께 뒹굴던 옛날이 잠시 기억난다.

어느새 난 자유인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명패를 달고 다닐만큼 모든 집회와 성경공부와 수련회에 빠짐없이 출석하였다. 그런것이 싫었다면 죽어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덕분에 나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평가는 신실함이었다. 내 친구는 그것에 조금 덜 민감하여 슈퍼 빤질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여간 그곳에 구속되어 있었던 것은 삶의 진정한 목적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얻었던 삶의 목적은 를 위한 삶을 살지 않고 을 위해 사는 삶을 살자였다. 그것은 그 이후 나의 인생에 많은 방향타를 건드려왔다.

생각지도 않은 공학전공자가 신학생들이 봐야할 기독교서적을 읽어대며 그 세계관을 정립한다며 설쳐댔던 일은 대학 입학하자마자 도서관의 일반 소설류와 문학책을 섭렵한다는 열정보다 깊었으며 강렬하였다. 그런 열정이 결국은 균형있는 삶을 살지 못하게 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아마두 그리스도인이라면 한번쯤은 경험하지 않았을까?

삶을 그런 관조적인 자세와 넉넉한 마음같은 타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던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아마두 내 앞에 있지 않으나 늘 마음의 고향이 되고 있는 부모님들의 빈자리 때문이다. 잘 나가던 고3때 아버님은 사고로 인해 돌아가셨으며 그 나이때 병원 영안실에서 어른들이 쥐어 준 지폐 몇장을 천국여비로 쓰라고 싸늘한 주검위에 넣어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 마음속의 아버지는 생활고를 극복하느라 그 어려운 노동을 감내하기 위해 늘상 술로 힘든 인생을 달랬던 분이시다. 어린시절부터 고3때까지 그런 아버지는 친구같은 존재라기보다는 사랑하지만 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다만 그분의 심정을 이해하는 정도였다. 반면에 어머니는 무척 자상하시기도 하고 유머가 있어 늘상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시골에서 인천 주안에 정착하기까지 그렇게 오랜 삶을 사신 것도 아니었다. 위암말기증세로 몇년을 고생하시다 아버님을 따라 하나님 나라로 가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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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말과 함께..
웬지 혈육은 언제 만나도 헤어져 살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함께 살아간다는 것과 어떠한 잘못과 원망이 있더라도 그들의 상황이 어려울때는 측은함이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베이게 한다.
아마도 안타깝다는 것은 그만큼 가족과 같은 따스함이 묻어 있을때만 나타날 수 있는 감정이 아닐까 한다.

자신의 삶과 인생에 아무런 개입이 없다면 굳이 안타까와 할 이유도 걱정이 되어줄 이유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존재가 그렇듯 어울어짐을 요구하며 함께 하고자 하는 집단공동체를 형성하고자 하는 마음도 다 관심과 사랑을 응집하고자 하는 열망에 기인한다고 본다.

겨울은 삶을 건조하고 춥게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고자 하며 끊임없이 노력할 때 어두웠던 내면의 불편함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시화방조제가 만들어 놓은 길목을 따라 갯벌을 걸었던 우리 다섯 식구들은 아직 끈끈함으로 사랑함으로 함께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누가 뭐라해도 누군가를 향하여 내면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그것으로 가족애는 살아있는 것이 아닐까? 받은 상처가 아무리 깊고 크더라도 나를 향한 그분의 한결같은 용서앞에는 고개를 숙여야 하기때문이다.
2007/02/03 02:45 2007/02/03 02:45
Posted by 길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