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인생은 단지 커피 한 잔의 문제 또는 커피 한 잔이 가능케 해 주는 친밀감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미국의 소설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쓴 문장중 하나이다. 커피. 대부분의 사람들은 커피를 좋아한다. 나도 좋아한다. 특히 커피는 독한 술처럼 취하게 만들거나, 와인처럼 많은 공부를 하고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어쩌면 우리는 커피를 ‘너무 모르고’ 마시는 건지도 모른다. 강릉에서 테라로사(TERAROSA)라는 커피전문점과 팩토리를 운영하고 있는 김용덕 씨(50세)는 소문난 ‘바리스타’ 이다. 그와 마주앉아 ‘커피 한잔’을 마셨다.

우선 나는 당신과 커피에 대해 수준 높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준비되거나 훈련이 된 인터뷰어가 아니기에 걱정이다.

걱정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때론 한 잔의 커피가 모든 두려움과 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한다. 나도 그랬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은행원이 되어 은행을 21년간 다녔다. 그러다보니 파릇한 열여덟 소년이 마흔의 중년남자가 되어있더라. 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깜짝 놀랐지. 이 사람 누군가 하고.

커피한잔 마실 여유 없이 살았었다는 말로 들린다.


그렇다. 굉장히 어렵게 살았다. 어렸을 때 부터 가난했었고 말하자면 고학생이었다. 고등학교 진학할 때, 내가 인문계 가야하나 실업계 가야하나 고민도 못해보고 당연히 실업계 학교를 갔다. 내가 뭘 잘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뭐든 빨리 돈을 버는 방향으로만 살아야했지. 그렇게 졸업하고 은행에 들어가고, 매일 계산기 두드리며 뒤도 안돌아보면서 살다가 보니 마흔 살이 된 거였다. 그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커피 한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올드보이>처럼 물었다. ‘누구냐. 너.’ 하하.

그 질문과 대답이 은행을 그만두게 만들고 커피의 세계로 당신을 인도 한 건가?

글쎄. 하지만 분명히 그날, 이전까진 한 번도 상상 못했던 ‘은행을 그만둘 용기’가 생겼다. 다행이(?) 그때 IMF도 왔다. 명예퇴직자 신청 받는다고 해서 제일 먼저 손들고 퇴직 한 거다. 그리고 1년 동안을 처음으로 나를 위한 사치스런 시간을 썼다. 이제 뭘 해야 하나라는 두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우선은 내 인생을 결박하고 있는 유, 무형의 규칙들로부터 먼저 내가 좀 자유스러워질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1년간 전 세계를 여행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살아야 하니까’ 레스토랑을 차렸는데 잘 안됐다. 물론 나중엔 왜 안됐는지 원인도 알았지. 충분한 음식공부를 하지 않은 채 섣불리 시작했기 때문에 당연히 안된 것이었다. 그래서 또 6개월 음식공부만 했다. 청담동의 유명한 음식점들을 시작으로,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최고의 음식을 먹어보고, 느끼고 배우면서. 그러다가 커피를 만난 것이다.

‘그러다가 커피를 만난 것이다...’라는 말은 좀 감상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날마다 커피를 만나고 마신다.

물론. 그런 시각과는 아주 다른 만남이었지. 감성적으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지만 내게는 분명히 ‘충격적’이었다. 그리고는 커피에 푹 빠진 거다. 커피의 기원부터 파기 시작했다. 원산지들은 어딘지, 전 세계의 기준은 무엇인지도 차츰 알아갈 수 있었고. 그렇게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다보니 내 안에 ‘방향성’이 생겼다. 내가 어떤 커피를 만들고 소개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 말이다. 그리고 6년 전 이 곳 강릉에 ‘테라로사’를 연 것이다.


당신이 발견한 기준이나 방향성을 묻고 싶지만, 그러면 너무 전문적인 영역으로 들어갈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이전에 우리나라 커피산업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부터 묻자.

개인적으로는 ‘스타벅스’가 소개되면서 부터 우리나라에 커피가 대중화 된 것이라 보고 있다. 하지만 이건 대중에게 알려진 정도일 뿐 일반화 되었다고 말할 순 없다. 아직 우리나라의 인스턴트와 원두커피의 소비량은 9:1정도다. 물론 기성세대들의 입맛이 평생 인스턴트 커피에 길들여져 온 영향도 크지만, 대형 커피 브랜드들이 원두커피 시장이 생기도록 가만 놔두지도 않았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커피산업은 가까운 일본에 비해서도 수 십년은 뒤쳐지고 낙후된 것이다.

낙후되었다는 표현의 근거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기술적인 부분인가? 아니면 시장 환경?

전반적으로다. 일본은 한해 원두를 약 50만 톤 소비한다. 우리나라가 7만5천 톤에서 8만 톤 정도 소비를 하니까 6배 정도 차이가 난다. 그게 세계3위(일본)와 세계11위(우리나라)의 차이이다. 그렇지만 그 여덟 계단은 이미 따라잡기 힘든 차이다. 우리가 일본을 능가하자고 한다면 30년 내지 40년이 걸릴 것이라고 본다. 우선 우리는 인프라가 너무 취약하다. 지금은 남미 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중동 등 세계의 많은 나라가 커피를 생산한다. 일본 북해도 쪽에 있는 작은 커피전문점을 다녀온 적이 있다. 우리 가게의 절반도 안 되는 크기의 작은 집이이었다. 그 집 주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사람은 ‘예맨 커피’의 대단한 전문가였다. 그는 30년 동안 세계의 모든 커피농장을 돌아다니면서 원두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 작은 커피집 주인이 예맨 커피에 관한한 세계적인 전문가이다. 근데 일본엔 그런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예를 들어 ‘브라질이다’ 하면 브라질 농장을 다니면서 농장주들하고 친분을 유지하며 하는 식이다. 심지어 직접 농장 관리까지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대기업에 조차도 ‘산지 전문가’가 당 한명도 없다. 그러니 당연히 좋은 원두를 확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을 따라 잡겠는가?

세상에는 100원 짜리 커피도 있고, 100만원 짜리 커피도 있다. 그리고 현재 최고급의 커피 전문 시장은 일본이 장악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1950년대부터 질 좋은 원두를 확보하는 것이 커피산업의 기본이라는 것을 인식했던 거다. 우리나라 대기업이 인스턴트 커피 매출을 위해 원두시장을 의도적으로 묵살해온 것과는 정 반대지. 그렇게 일본의 경우는 앞서나간 선구자들이 굉장히 열심히 잘했다. 그러니 뒤 따라오는 사람들이 ‘어떤 것이 낫다’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커피 전문가들이 돈과 명예를 얻었다. 그러다보니 ‘아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구나. 멋진 것이구나’ 하는 걸 느꼈다는 거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커피에 대한 그 ‘산업적인 드리밍’ 조차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생각하는 커피시장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그런 기업들의 노력과 함께 ‘문화적 환경’도 동반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10만원 짜리 커피도 마실 수 있다는 견해들 말이다. 미국인들에게 스타벅스는 출근하면서 당연히 한잔을 들고 가는 생활 속 문화이지만, 우리의 시각은 그렇지 못하다. 아직도 4,000원짜리 밥 먹고 5,000원짜리 커피 마신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더 많다.

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의 커피 값은 너무 비싸다. 물론 원인은 있다. 먼저 말한 대로 우리가 직접 좋은 원산지와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보니 나만해도 원두를 일본인 도매상을 거쳐서 사온다. 그러면 당연히 소비자가 부담해야할 코스트가 올라가는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커피 값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나라중의 하나이다. 일본이 200엔에서 250엔이니까 환율을 따져도 비싸다. 유럽에 가면 어떤 카페는 한 눈에 봐도 럭셔리 하다는 것이 보여 진다. 그런데 사실은 그 럭셔리한 카페를 아무나 다 들어간다. 거기 앉아서 마시면 비싸지만, 서서 마시면 1~2달러에도 그 집의 커피를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것이 ‘고급 대중문화’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중이 진짜로 커피를 사랑하는 모습이라고 받아들여진다. 현재 우리에겐 '인스턴트는 싼 커피, 원두는 비싼 커피'라는 이중적 잣대밖에 없다. 인스턴트가 싸기 때문에 대중적이다 라고 말하면 안 된다. 좋은 것을 대중적으로 맞추려는 노력이 문화의 임무 아닌가? 나와 커피도 마찬가지다. 저건 비싸니까 하며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걸 ‘대중의 높이’에 맞출 수 있는가를 고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서울 강남이 아니라 이 ‘강릉’에 커피전문점을 차린 이유이기도 하다. 커피는 결코 부자들만의 문화가 아니다. 처음엔 시골에서 이 커피점을 내니까 이곳 사람들이 이해를 못했다. 이게 무슨 커피냐 하면서. 근데 그걸 뛰어넘으려는 열정으로 밀어 붙였다. 그렇기 때문에 6년 이상 살아남은 것이다. 이런 것이 많아지게 되면 대중화가 되는 거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강릉만 해도 이제 그런 열정이 있는 커피전문점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런 열정이 전체의 대중문화를 끌고 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멋진 철학이다. 커피 한잔으로 대중문화의 핵심을 설명하신 것 같다. 하지만 언제나 개척자의 길이란 쉽지 않은 것일 텐데...

물론 나 역시 아직까지 금전적으로 쉽다고 할 수 없는 상태이다. 버는 것 보다 쓰는 게 많다. 하지만 내가 가야될 길이 어디인지, 전 세계 최고 품질의 커피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소개하는 것이 먼저 시작한 사람으로서 의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요즘은 많은 분들이 커피전문점을 하겠다고 나를 찾아오신다. 그래서 그 방향으로 물꼬를 트는 역할을 내가 나름대로 할 수 있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확신으로 힘든 단계를 넘어서야 하겠지. 그걸 넘어서면 보기 좋아지는 것이고.

최근커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온라인상에서 동호회를 조직하고 직접 브랜딩을 해서 마시는 움직임도 활성화 되고 있다. 그런 이들을 위한 강의도 많이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터넷 세상이 좋긴 좋다. 인터넷 안에 워낙 좋은 커피에 관한 전문 자료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가끔씩 그런 분들을 만나면 이론적로도 너무 우수해서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이것은 분명히 우리의 강점이다. 일본 친구들은 한 번 길을 확인하면 역동성이 없어서 그걸 벗어나지 못하는 게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거 아니면 이거’ 하고 도전적으로 뛰어 넘는다. 넘어지기도 하지만, 한계를 깨는 경우도 그러다보면 나온다. 그래서 나는 희망이 있다. 이 커피를 멋지게 연출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산업적으로도 성장하고, 문화공간이 되고 ‘야 어디에 가면 그런 집이 있다더라.’ 하게 될 것이다.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하나의 음료만 입안에 넣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는 그 공간을 마시는 것이고, 뇌로는 하나의 산업을 마시는 것이고, 가슴으로는 동시대의 문화를 마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커피가 우리에게 선물하는 ‘맛과 멋’이겠지.

마지막으로 묻겠다. 커피 한 잔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음... 커피만큼 인류에게 정신적 사치를 느끼게 해 준 발명품은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자신의 사상과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고, 개인의 인생이나 역사가 선택의 순간을 만날 때 언제나 커피 한 잔이 동행한다고 생각한다. 나 개인적으로는 커피를 통해 마흔 살이 될 때까지 몰랐던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일을 꿈꾸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된 동기였다고 본다.

‘바리스타 김용덕 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노트를 열어 그가 이야기 문장을 적어보았다. ‘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하나의 음료만 입안에 넣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는 그 공간을 마시는 것이고, 뇌로는 하나의 산업을 마시는 것이고, 가슴으로는 동시대의 문화를 마시는 것이다.’ 그가 만들어 내 준 한 잔의 커피는 오래 기억날 정도로 맛이 있었다.

출처[네이버]
2010/08/12 05:25 2010/08/12 05:25
Posted by 길목


출처_ http://www.design.co.kr/section/news_detail.html?info_id=40967&category=000000060002

매일 커피 볶는 남자 김용덕 씨의 발견

식을 때 드러나는 커피본색




커피 한 잔에 온 열정을 바치는 사람이 있다. 강릉에 있는 커피 팩토리 테라로사의 김용덕 대표가 주인공이다. 9년 전 잘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커피에 ‘필’이 꽂혀 지금껏 달려왔다. 원두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었기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할 수 있었다는 그의 덤덤한, 그러나 뜨거운 커피 사랑 이야기.




1 9년 전 잘 다니던 은행을 관두고 커피 볶는 일을 시작한 김용덕 씨. 좋아서 시작한 일이 지금은 전 세계에서 들여온 40종류의 원두를 볶는 커피 공장을 경영할 만큼 커졌다.
2 아래 세계 곳곳에 있는 유명한 레스토랑과 커피숍에서 모아 온 엽서들. 하나씩 살펴보면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생 각해보면 커피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음료도 없다. 남녀가 처음 만나는 어색한 자리, 회의를 하거나 혼자서 책을 읽을 때, 휴식을 취할 때도 커피는 필수다. 여기, 아침에 눈 뜨자마자 양치질도 안 한 상태에서 커피부터 찾는 이가 있다. 강릉에서 커피 볶는 일을 하는 김용덕 대표가 그렇다. 커피 팩토리 테라로사. '비옥한 흙tera’에서 피어나는 ‘장미rosa’라는 의미를 지닌 2층짜리 목조 건물이 김용덕 대표의 보금자리다. 테라로사는 전 세계에서 들여온 40여 종류의 원두를 볶는 공장인 동시에 카페, 이탤리언 레스토랑, 베이커리이면서 또 시시때때로 음악회나 시낭송회 등이 열리는 문화 공간이다. “외국에는 지역마다 문화 활동을 펼치는 명소가 많아요. 강릉에도 그런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좋은 커피와 제대로 된 음식을 맛보면서 문화적으로도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그런 곳이요.” 김용덕 대표가 테라로사를 만들게 된 계기다.

그가 테라로사를 연 지 5년이 지났다. 지금은 마음이 내키면 배낭 하나 메고 어디로든 여행을 다니는 ‘자유로운 영혼’이지만 9년 전 그는 이마에 ‘성실’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은행원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사표를 내겠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말렸다. 마흔살 때였다. 매일 반복적으로 ‘열심히만’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갑자기 지겨워졌단다.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20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자 하여 건축학과에 학사 편입하여 공부와 여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부업으로 예쁜 레스토랑을 열었다. “처음부터 이탈리아 음식이나 좋은 커피를 선보일 생각은 없었어요. 그쪽은 무지했다고 하는 편이 낫겠죠. 경양식 집에서 나오는 비프스테이크나 돈가스 등의 음식을 했는데 장사는 잘되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청담동에 있는 유명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갔다가 문화적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요리 잘하는 맛집이란 맛집은 대부분 다 돌아다녔다. 그것도 모자라 외국으로 미식 여행을 가기도 했다.

김용덕 대표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커피를 마시고 잠들기 전까지 커피를 마신다. 그가 시간대별로 마시기 좋은 커피를 알려주었다.

“식 사가 아무리 맛있어도 마지막에 마시는 커피가 별로라면 좋았던 기억이 흐려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커피에 전념하기 시작했죠.” 손님에게 맛있는 후식 커피를 대접하기 위해 백방으로 커피숍을 수소문하며 다녔다. 그러다가 완전히 커피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 것. 우선 서울의 소문난 집 몇 군데를 갔다. 청담동의 ‘커피미학’(02-3440-0770), 사당동의 ‘엘빈’(02-597-4755), 부암동의 ‘클럽 에스프레소’(02-764-8719)와 같은 집도 그때 알게 되었다. “이 세 곳은 대부분의 커피 마니아들이 인정하는 곳이지요. 커피미학은 서울에서 드립 커피를 제일 먼저 시작했어요. 클럽 에스프레소는 주인의 개성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곳이며, 울산의 ‘빈스톡’(052-267-7847), 경주의 ‘슈만과 클라라’(054-749-9449)도 이미 지방의 커피 명가로 이름 높은 집입니다.” 한국의 커피를 맛본 뒤 일본과 유럽, 미국 등의 커피숍과 레스토랑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일본의 커피 문화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어요. 우리나라보다 30년 정도 앞서 있더군요. 커피를 대하는 소비자들의 태도도 우리나라와는 조금 달라요. 예를 들어 커피를 주문할 때 자신이 원하는 원두와 굵기까지 요구하지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만델링을 미디엄으로 로스팅하여 중간 정도로 갈아서 보내주세요”(이런 곳은 제트 로스팅이라 하여 커피를 순식간에 로스팅한다)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주문을 받자마자 1분 30초 만에 원두를 로스팅하여 택배로 나가는 시간까지 30분이 채 안 걸려요. 얼마나 신선하겠어요. 커피숍 한 군데에서 1백30가지 이상의 원두를 취급하는 곳도 있어요.” 김용덕 대표는 대중적인 커피 문화가 부럽다고 말한다. 일본인들은 신맛을 좋아하는 경향이 많은데 일본에서 잘한다는 커피숍은 대체적으로 신맛을 잘 정제해서 내는 곳. 특히 완숙된 신맛은 커피원두 가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에스프레소의 원조국인 이탈리아에는 전설적인 카페가 무척 많아서 다니는 내내 행복했다. “이탈리아만 돌아다녀도 에스프레소를 이해할 수 있어요. 이탈리아는 모든 국민들이 커피를 즐기기에 평범하면서도 맛있는 대중적인 원두가 많아요.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커피숍 ‘카페 크레코Caffe Creco’(1760), 베네치아 최초의 커피숍 ‘쿼드리Quadri’(1683) 등은 문을 여는 순간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세월의 흔적이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베네치아의 ‘플로리안Florian’(1720)은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했을 때 항거한 역사적인 카페로 수많은 작가와 화가를 단골로 두고 있지요. 카사노바와 괴테가 이 집 단골이었고, 나폴레옹조차도 베네치아를 정복하자마자 가장 먼저 이곳으로 달려왔어요.”

김용덕 씨의 딸 민선 씨와 아들 민현 씨도 아빠만큼 커피를 좋아해서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열리는 커피 전시회에 참여할 정도.

하루 여섯 잔은 기본
김 용덕 대표는 이부자리에서 눈을 뜨자마자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신다. 양치질도 하기 전이다. 밤사이 잠자고 있던 혀에 커피가 닿는 순간, 원두가 품고 있는 순수한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다. 그는 하루에 커피 여섯 잔을 기본으로 마신다. 테라로사에서 커피를 볶는 날이면 맛을 가늠하기 위해 열다섯 잔 이상 마실 때도 있다. 시간대별로 생체리듬도 달라지기 때문에 마시는 원두 종류도 달라진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 잔, 점심과 저녁 식사 후 한 잔, 그리고 끼니마다 한 잔씩, 마지막으로 자기 전에 한 잔 마시면 총 여섯 잔이 된다. 원두마다 개성이 다르기 때문에 시간대별로 원두를 맞춤식으로 다르게 하면 더 풍부한 커피의 세계를 느낄 수 있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로 제 혀와 몸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음식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이니까요. 제가 아침에 주로 고집하는 원두는 수마트라입니다. 수마트라 커피는 향기나 맛이 강렬해서 일반인들에게는 오후에 잠을 깨우는 원두로 알려져 있지요. 흙냄새가 특히 좋은 커피로, 굵게 갈아서 드립 방식으로 마십니다.” 아침과 점심 사이에는 과테말라와 코스타리카, 모카하라를 블렌딩한 레귤러 커피를 마신다. 코스타리카는 다루는 이에 따라 맛이 확연하게 달라지는 원두. 굵게 갈아서 빠른 속도로 내려 마시면 강한 보디감(입에서 느껴지는 농도)을 느낄 수 있다. 모카 계열의 커피는 조금만 넣어도 전체적인 커피 맛에 영향을 주는 ‘양념’ 커피다. “블렌딩을 할 때 어떤 커피는 50% 이상을 섞어도 맛에 영향을 주지 않지만 모카와 로부스타 같은 원두는 5%만 넣어도 커피 맛을 바꾸어놓습니다.” 점심에는 과테말라, 만델링, 모카하라, 브라질을 블렌딩한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테라로사의 베스트셀러인 에스프레소는 떫은맛과 쓴맛이 덜한 부드러움과 뒤따라오는 고급적인 향기로움이 특징이다. 과테말라는 달콤한 초콜릿 향과 스모키 향이 나며, 부드러운 커피의 대명사인 모카하라는 와인처럼 깊은 풍미가 느껴진다. 원두는 불에 오래 볶을수록(강배전이라고 한다) 색깔, 향, 맛이 강해진다.

커 피 한 잔에 온 열정을 바치는 사람이 있다. 강릉에 있는 커피 팩토리 테라로사의 김용덕 대표가 주인공이다. 9년 전 잘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커피에 ‘필’이 꽂혀 지금껏 달려왔다. 원두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었기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할 수 있었다는 그의 덤덤한, 그러나 뜨거운 커피 사랑 이야기.




1 프랑스 리모주, 로얄 코펜하겐, 파라곤, 마이센 등 명품 브랜드에서 나온 오래된 앤티크 커피잔들. 처음에는 보는 눈이 없어서 필요 이상으로 가격을 지불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웬만한 전문가 못지않은 눈썰미가 있다. 이곳에서는 앤티크 잔에 커피를 마시는 호사를 부릴 수 있다.
2 손님이 주문하는 동시에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린다. 김용덕 대표 외에도 숙련된 바리스타가 항상 대기 중이다.

김 용덕 대표는 강하게 볶은 모카하라와 수마트라 원두를 즐긴다. “수마트라와 모카하라로 그 집 실력을 알 수 있어요. 두 가지 모두 과육 자체가 단단하고 알의 크기와 수분율이 일정치 않아 무척 다루기 까다로운 원두거든요.” 하루 중 몸이 가장 노곤할 때가 점심과 저녁 사이다. 이럴 때는 몽롱한 몸 상태를 깨워줄 만한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싱그러운 과일 향기가 묻어나는, 가장 아프리카답다는 평을 듣는 케냐 원두가 등장하는 시간도 이때다. “케냐는 진하게 먹기 위한 커피지요. 기본적으로 잘 익은 과일의 신맛이 느껴집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아메리카노 스타일의 커피를 마신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아메리카노 스타일의 레귤러용 원두는 탄자니아. 헤밍웨이가 ‘아프리카의 신사’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로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지만 김용덕 대표는 부드럽기만 한 탄자니아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대신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이나 코나, 모카하라, 시다모, 이르가체페 등의 원두를 선호한다. 특히 시다모와 이르가체페는 원두 중에서도 카페인 함량이 가장 적은 원두에 속하기 때문에 보리차처럼 가볍게 마실 수 있다. 자기 전에는 카페인이 적고 부드러운 커피가 알맞다. 자연적인 카페인 함량이 가장 적다고 일컬어지는 3대 커피인 이르가체페, 시다모, 미소레를 중심으로 중배전한 하와이 코나 정도를 더하면 된다.

커피는 기호 식품으로,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김용덕 대표가 처음 커피에 빠져들었을 때는 강한 향기와 맛을 추구했다. 일본에 숯처럼 검게 태운 커피 집이 있었는데 그 집 커피가 그렇게 맛있더란다. 강렬한 커피는 혀를 사로잡는 매력은 있는데 금세 질려버린다. 그가 요새 추구하는 커피는 ‘평범하면서도 맛의 깊이가 느껴지는 커피’인데 그것이야말로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그는 일부러 커피를 식혀서 마시기도 한다. “좋은 원두일수록 식혀서 마실 때 그 진가가 드러납니다. 식은 커피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 같아요. 본색이 드러나지요. 맛있는 커피는 차게 먹어도 향기가 느껴집니다.” 김용덕 대표는 커피는 와인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한다. 한 잔에 담긴 맛과 향이 수십 가지 언어로 표현될 수 있고, 그에게 원두마다 지닌 고유의 성질을 즐기는 것은 하나의 큰 즐거움이다. 그러나 (김용덕 대표가 생각하는) 커피와 와인의 다른 점 하나. 와인은 음식을 곁들이면 그 맛이 더욱 향상되지만 커피는 그렇지 않다. 설탕 자체가 원두 고유의 맛을 방해한다고. 그러나 좋은 커피에 대한 정의는 없으니 ‘2백 원짜리 달달한 자판기 커피를 좋아한다’고 하여 비난받을 일은 전혀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요즘에는 원두 분쇄기와 간단한 로스터, 에스프레소 머신 등을 갖춘 집도 많다. 김용덕 대표가 알려주는 맛있는 커피 즐기는 법. 우선 원두는 볶은 지 15일 이내의 것을 사용하고 먹기 직전에 갈아야 향이 날아가지 않는다. 두 번째, 한 번 내릴 원두량은 적어도 10g을 준비할 것. 일반 호텔에서 5~8g, 커피 전문점에서는 10g을 쓰는데 원두 양을 많이 하고 내리는 시간을 짧게 할수록 커피가 맛있어진다. 이때 물의 양은 150cc로 내리고 120cc만 추출한다. 마지막으로 커피는 3분 이내에 내린다. 그래야 떫은맛이 덜하고 카페인 함량도 적다. 이 두 가지는 물에 가장 늦게 녹아 나오는 성분이기 때문에 물이 원두에 닿는 시간을 짧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용덕 대표는 보통 30g의 원두를 1분 이내에 내린다.

1 일 본과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등에 있는 전설적인 카페를 돌면서 모은 흔적들. 유명한 카페를 방문하는 것도 좋지만, 알려져 있지 않은 커피숍을 발견하는 일이 더욱 기쁘다고 한다. 1백 년 이상 된 집들 중에는 아직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숨겨놓은 보석 같은 집이 많다고.
2 테라로사의 온실에서 자라는 커피나무.
3 테라로사에서 로스팅한 원두는 15일을 넘기는 법이 거의 없다. 신선함을 자랑하는 이곳 원두는 대한민국 3백여 곳의 레스토랑과 호텔 등으로 나간다.
4 본격적으로 커피 공부를 시작하면서 한두 권 씩 모은 전문 서적.

대물림하는 커피 사랑
스 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두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가면 세계적인 맛집 ‘엘 불리El Bulli’ 있다. 2년 내 예약이 다 차 있는 이 집은 27가지의 코스 요리를 네 시간에 걸쳐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김용덕 대표는 음식 하나를 위해 세계 곳곳에서 그 시골로 가는 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런 레스토랑이 각광받는 것이 셰프 실력이 매우 뛰어나거나 온 실내를 금으로 도배할 정도로 인테리어가 훌륭하기 때문만은 아닐 터. 솜씨는 기본, 분위기와 서비스, 그리고 오래된 역사가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서로 어우러지면서 풍기는 독특한 분위기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김용덕 대표가 꾸미고자 하는 공간 역시 커피를 매개로 하여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곳이다. 그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축적한 경험이 테라로사에 녹아 있다. 자체적으로 베이커리가 있어 매일 빵과 케이크를 굽고 홈메이드 스타일의 푸짐하고 담백한 이탈리아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1년에 서너 번 음악가와 시인들을 초청하여 지역 주민들과 함께 작은 음악회를 열기도 한다. 이때는 커피 포대를 층층이 쌓아 좌석을 만들고 관객들에게 신선한 커피와 빵을 제공하기도 한다. 얼마 전 김용덕 대표의 딸 민선 씨는 일주일 정도 미국에서 열렸던 커피 전시회SCAA를 다녀왔다. 아들 민현 씨도 마찬가지. 둘 다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음악도이지만 커피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틈만 나면 서빙을 하고 커피를 내려 손님들에게 선보인다. 정성껏 내린 커피 한 잔에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미소를 보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일 것이다. 사람들의 흐뭇한 얼굴을 보면서 왜 아버지가 강릉에 문화 명소를 꾸미고 싶어 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스스로가 좋아서 매달린 일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테라로사에서 선보이는 원두는 40여 가지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원두를 보유한 곳 중 하나이다. 그러나 커피에 ‘올인’하는 아버지와 아들, 딸을 보고 있자니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1백 종 이상의 원두를 전시해놓는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커피 전문점이 탄생하기를 기대해도 무리가 아닐 듯싶다.

김용덕 대표가 추천하는 테라로사의 인기 원두
블루마운틴
풍부한 향과 균형 잡힌 맛으로 커피의 황제라고 한다. 저녁 식사 후 시다모, 이르가체페 등의 원두와 블렌딩하여 아메리카노로 마신다.

탄자니아 아프리카의 신사라고 하는 탄자니아는 과일 향이 싱그러운 원두. 그러나 김용덕 대표는 ‘무작정 부드러운 그 맛’에 큰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고.

코나 하와이산 원두로 고급스러운 신맛이 난다. 커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내 한정희 씨도 코나는 즐겨 마신다.

케냐 아프리카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원두로 잘 익은 과일에서 나는 신맛이 난다. 점심 식사 후 진하게 내린 케냐로 식곤증을 물리친다.

수마트라
만데링이라고도 하는 수마트라는 남성다운 커피로 보디감이 강하다. 슬며시 올라오는 흙냄새가 매력 만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원두라고.

과테말라 초콜릿 향기와 매캐한 스모키 냄새가 난다. 허기가 돌 때 마시면 그 맛을 더욱 잘 느낄 수 있다.

바니마타리 고급스러운 맛과 향기 때문에 모카커피(모카에서 생산되는 원두를 총칭) 중 최고급으로 친다.

이르가체페 오묘한 풍미와 과일 향기가 와인을 닮은 원두.

시다모 카페인 함유량이 가장 낮은 원두로 스파이시하면서 꽃 향기가 난다. 잠들기 전에 주로 마신다.

모카하라 향과 맛이 섬세한 모카하라는 가장 여성적인 원두로 알려져 있다. 수마트라와 더불어 김용덕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
[출처] 행복이 가득한 집 (2007년 6월호) | 기자/에디터 : 박은주 / 사진 : 양재준
2010/08/12 05:19 2010/08/12 05:19
Posted by 길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