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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2/17 수확 (4)
지난달 중순 청평 장인어른댁에 갔던 일이 있었다. 무, 배추가 얼기전 수확을 마무리 하자고 하셨던 지난 기억들이 되살아 나 그때를 생각해 본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기실 재미있었던 것은 그동안 정성스레 가꾸었던 농작물을 수확하는 기쁨이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직접 키우는데 동참하지 않았지만 가을이 되면 재미있게 동참할 수 있었던 노동이 있었다. 작년에는 토란 수확에 흠뻑 마음을 빼았겼었는데 올해는 배추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칼들고 니어커 끌고 배추잎사귀를 바라보며 기쁨을 느낀다. 크득크득 그저 입을 벌려 웃을 뿐이다. 진우는 그 작은 몸집을 가지고 커다란 수레를 끌고 싶다한다. 종일 피곤에 지친다는 말은 노동의 가치를 알고 그일에 즐거이 동참했을때는 생기지 않는다. 무엇에든지 억지로 한 것은 금방 티가 나게 되어 있다. 기차길옆 작은 밭에서 생산되었던 무우와 배추는 직접 키운것에 목말라 먹지 못한 우리집과 이웃으로 금방 배분되어 나간다. 그저 나눠 주는 것이 소유하고 있는 것보다 좋은 것이다.

한쪽 구덩이에 파 놓아 묻어 놓았던 무, 열어보니 빗물이 가득 고여 있다. 전부 다시 끄집어 내어 새로운 장소에 옮기는데 먹었던 점심때문에 허리가 굽혀지지 않았다. 너무 많이 먹어서...
아이들은 그저 흙을 파고 흙냄새를 맡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그냥 그런 삶이 좋은 것이다. 뛰어놀데 없고 차조심해야 하는 도시에서는 맛볼 수 없는 구수함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 역시 오랫만에 이런 삶을 누려본다. 가슴이 답답하고 머무를 곳 없어 방황하는 내 삶의 한 단면을 애써 숨기고 싶으나 땅은 그런 마음까지고 안아주며 나를 맞아주는 것 같다. 점점 귀농하고 싶은 마음도 있으나 도시생활의 단맛-편안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지금까지 버티어 나간다.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삶의 미래를 걱정하며 한점 두려움을 벗어던지지 못한 삶을 살아감은 나뿐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의 고민이 아닐까 한다.

연말이다.

내가 수확했던 것을 나누어주는 것에 너무도 인색해 왔다는 자책감이 든다. 며칠전 친구들끼리 작당하여 한 아이를 돕기 위해 돌렸던 편지글에서 오랫만에 느껴지는 인쇄용이 아닌 자필 볼펜글씨와 친히 마련한 몇푼 안되는 선물과 함께 했던 풋풋한 대학시절의 끈을 유지하기위한 노력을 하다보니 죽어가던 감성이 되살아 난다. 수고로이 연락하고 애써 끈을 이어가는 연대의 정신과 서로 짐을 나누어 짐으로써 공동의 선을 추구해 나가는 작은 끈이 그저 고맙다 느껴질 뿐이었다. 내 스스로가 살아있음을 느껴가는 것은 그런 것들이 많아지는 것이었다.

우리주위에 내 가까이에 아직도 열지 않은 낯선 얼굴들이 많이 있다. 한번도 인사하지 못하는 척박한 땅에 내가 떨쳐 나가고픈 작은 행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허락된다면 감사하련다. 그리스도가 태어난 성탄절 교회가 싫어진다 말하던 많은 사람들,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기에 불러온 거부감들, 기초부터 새로이 다지는 연습을 하려면 아직 할일이 많은 밤이다.
2006/12/17 21:38 2006/12/17 21:38
Posted by 길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