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갖게 된 새로운 생각들을 일단 정리하고 가야 할 것 같다. 난 우리 교회의 권찰이고 친구는 전도사이다. 곧 목사가 될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난 교회의 모든 일정들에 대해서 사역자라는 직분속에 모두 위임을 했다고 생각하며 교회는 내가 관심 써야 할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냥 친구에게 전적으로 위임을 했다고 스스로 굳어진 생각을 하게 되었고 교회라는 테두리보다는 좀더 세상속에서의 나 즉, 평소에 내가 관심을 가졌던 사회적 책임과 그 역할에만 집중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오랜 시간동안 대학에서 같이 동역의 길을 걸어왔기에 그리고 그 이후에 교회에서 같은 마음을 품고 있으며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최근 여러번의 대화를 통해 서서히 알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친구가 생각하는 교회의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1. 의사결정 과정
교회(敎會)는 말 그대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 배우기 위해 존재한다고 본다. 특별히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의 영역(당시예수그리스도가 약한자, 소외된자를 찾아가셨다는 점, 열두 제자들을 그 당시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의 고리 타분한 인간들에게서 찾지않았던 것, 사역의 중심이 영혼구원에 있지만 스스로 대속 제물이 되어 타인을 위해 희생했다는 점 등)에서...그런데 이 시대에 진정한 교회는 무엇인가? 우리 교회는 왜 그렇게도 다인 중심적이 아닌 일인 아니 몇명의 사역자라는 누명(?)을 씌어 그 몇사람 중심적인 사역(事役)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운영이 되어가고 있을까? (오해를 풀기 위해서 본인에 대해 말하자면 사실 교회에 15년 이상을 다녔고 교회가 사회를 향해 영혼 구원을 위해 애쓰며 그속에서 참된 은혜와 기쁨을 누렸던 것을 전혀 부정하지 않는다.)
개입(Engagement)하고 싶지 않았던 때가 더 많았다. 왜냐하면 개입한다는 것은 반드시 갈등을 가져오고 갈등이 만들어내는 것은 의견 대립과 시끄러움이다. 그런데 왜 자꾸 말이 시작되기만 하면 교회에 대한 이야기 특히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며 이야기하게 될까? 그것도 아주 직설적으로 말이다. 아마도 내가 친구이기때문에 여러가지 직설적인 말을 해도 그나마 서로간에 이해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 예측하지만 인간적인 입장에서 생각해 볼때는 기분이 나쁜 것이리라.
의사결정 과정은 여러가지 통로를 통해 만들 수 있다. 현재의 의사결정 과정은 주일 오후예배이후 남아있는 사람들이 함께 기도한 후 마음이 하나가 될때 이루어진다고 했다. 참석자들은 3명의 교회 섬김이 및 청년들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직분을 가지고 있는 집사,권찰 등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왜 교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 스스로 참여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 첫째는 이 교회가 내 교회다라는 의식이 부족하다. 즉, 내가 주인이 아니기에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주께서 나를 이 교회로 부르셨다.) 아무리 애정을 가지려고 해도 관심의 영역에서 밀리게 된다. 둘째로 애들 키우느라 바쁘다. 주일날 오후 늦게까지 시간을 낼 수 있는 그룹은 한정되어 있다. 셋째는 소외감이다. 결국 교회 전체를 바라보고 코디네이트 해주고 있는 담임 교역자와의 의사소통 부재가 가져오는 단절감이 크다하겠다. 어쩌면 의사 결정이라는 것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인간이 계획하고 인간이 결정하는 것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져 있는 분위기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어 일을 계획하고 일을 수행해 나갈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는 자발적인 마음이생기는 것이 아닐까?
2. 예배시간
난대학교때 IVF라는 단체에서 활동했다. 그때 좋았던 것은 감성이 강한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스스로 받아들였다는 것과 지성으로 그것에 동의했으며 진정한 서로간의 교제속에 사랑을 발견했다는 것에 있다. 예배시간은 바로 그런 것들을 통합해 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예배시간의 대부분은 늘상 설교에 집중된다. 나머지 시간에서 위의 요소들을 끄집어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순서들이다. 그러다 보니 결국 설교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주어야만 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그래서 12시 30분으로 고정되어 있어야 할 예배시간은 1시 가까이 늘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보통 한국 교회들은 예배시간을 1시간안에 다 소화한다.(현대 사회가 진척되어 갈수록 1시간을 넘기면 다들 힘들어 하므로...) 결국 시간에 있어서 효율적인 예배지기들(한백교회는 팀즉 3~4명이 예배시간을 준비한다. 담당자들이 미리 계획할 수 있도록 2개월 단위로 공지한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설교가 길어져 그 내용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약속된 시간내에서 전달해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너무 많은 포인트를 주려다 보면 시간이 길어짐은 당연한 결과다.
3. 고착화 된 관념
보통 교회의 구조를 보면 책상배치가 항상 권위적이다. 실제 권위는 그런 형식적인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가령 설교 강대상은 한단계 높이 있다. 그리고 나머지 책상,의자들은 강단을 중심으로 일자로 차곡차곡 줄을 지어 서 있는게 보통의 모습이다. 그러다 보니 다수가 설교자 일인에게 집중하는 결과가 도출된다. 설교라는 강의 형식에는 맞을 수 있으나 진정한 코이노니아 즉, 공동체성을 만들어 내기에는 어려운 경직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그러다 보니 강대상은 누구나 올라갈 수 있으며 예수님을 통하여 이제는 제사장의 특권이 부여되었던 구약시대의 하나님께로 나가기 위한 대리자로써의 단일 업종이 사라졌음에도 강대상은 몇몇에 의해 점령당하고 있다. 일반 사람들이 거기 올라가서 설교나 사회를 보는 것은 거의 이상하리만큼 어색하게 느껴지고 두려움이 넘치도록 만들고 있다. 설교자만 특권이 부여된 것으로 이해하게 되는 이유다. 개선이 필요한 점들이 있지만 그동안의 교회 관습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그걸 벗어난다는 것이 어렵다. 교회 전통을 벗어날 경우에는 항상 이단 시비가 일어났었기에...
1부 끝.
(이곳에 적고자 하는 교회에 대한 개념은 모두 사견이며 절대적인 기준도 아니다. 따라서 청중에 따라서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