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비폭력 평화물결(http://www.peacewave.net) 관련하여 내부워크샵 및 모임 공지등을 받다가 문득 인물 한명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박성준 선생입니다. 국무총리 내정자로 지명된 한명숙의원의 남편이기도 한 그에 대해 최근 단편적인 사실들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마두 생각없구 평화없는 곳에서의 삶은 고된 자기와의 싸움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아마두 생각없구 평화없는 곳에서의 삶은 고된 자기와의 싸움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움직이는 학교 - 가져온 글(박성준)

"움직이는 학교" -어느 몽상가의 새로운 시작(1) (2) - 박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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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숙 선생님,
그간 안녕하신지요?
한국에 돌아온 지 석 달이나 지난 이제야 소식을 전하게 되어 죄송한 마음으로 펜을 듭니다. 부디 넓은 아량으로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
윤선생님, 이번 5년 반만의 저의 귀국은, 저 1981년 크리스마스 날 새벽 13년 6개월만에 감옥에서 석방되어 돌아오던 때 보다 더 큰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 찬 귀향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제 손이 빈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좋은 '선물'을 한아름 안고 돌아 왔거든요. 무슨 선물이었느냐 고요? 정직하게 대답하지요. 그 선물이란 바로 '움직이는 학교'라는 저의 새로운 꿈(vision)입니다.
그럼 이제 차근차근 이 학교--'학교'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21세기의 새로운 형태의 '교회'라고 해도 무방하겠지요--에 관한 저의 구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움직이는 학교'는 위치가 없습니다. 즉 한 곳에 고정된 건물이나 교실을 갖지 아니합니다. 이 학교는 제 자리에서 학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학생을 찾아 나섭니다. 학생이 먼 곳에 있으면 멀리 여행합니다. 그래서 움직이는 학교입니다.
이 학교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우선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안에 하나님을 모신 존엄한 존재임을 자각할 수 있도록 서로 돕는 데 있습니다. 각 사람이 자주적 인격의 주체로서 일어서서 당당히 걸어갈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고 서로 가르치고 배웁니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과 사회와 인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책임 있는 존재가 되자는 것입니다.
이 학교의 정신적 푯대가 되는 원리(principle)는 '경청'(敬聽)입니다. 경청이란 "겸허하게 정성을 다해 귀를 기울여 듣는 것"(mindful listening)을 말합니다. 나의 존재의 가장 깊은 곳을 열어 놓고 하나님에게, 자연에게, 사람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고요히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움직이는 학교에서 사람들 상호간의 관계는 일방이 타방을 가르치는 관계가 아닙니다. 자신의 계획이나 용건, 남을 가르치고자 하는 의도, 판단이나 충고 따위를 완전히 접어놓고 오로지 상대방에게 전적으로 나를 내맡기는 방법으로 고요히 귀를 기울이는 그러한 관계입니다.
이 학교에서는 선생과 학생 사이에 이분법적인 분리가 없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 되고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이 됩니다. 서로 배우고 서로 가르치는 관계이지요. 모두가 선생이고 모두가 학생이라고나 할까요. '선생'이라는 말 대신에 '일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주선하고 돕는 이'라는 뜻의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라는 영어 어휘에 해당하는 우리말이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도우미'라는 말이 아름다운 우리말로 자리잡았듯이 차차 그런 말을 만들어 정착시켜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이 학교에서는 '선생'이라는 말의 참된 의미는 '잘 경청하는 이'(a good listener)라는 것입니다.
선생(='잘 경청하는 이')은 학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을 찾아 때로는 먼 곳을 여행합니다. 현재의 삶의 방식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 새 삶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그를 찾아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나 사회 현실에 대해 고민하는 이, 뭔가 대안이 될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사회, 새 세상을 갈망하는 이, 이를 위한 새로운 지식과 통찰에 목마른 이, 이런 분을 찾아뵙고 말씀을 경청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학교는 '길 위의 학교'(a school on the road)입니다.
이 학교는 교실이 하나 뿐인 학교입니다. 이 학교의 학생 수는 열 명 이내로 제한합니다. 열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방이 하나 있으면 당장에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학교는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비용이 덜 드는 가장 값싼 학교입니다.
교실 안의 좌석은 열 명이 빙 둘러앉도록 원형으로 배치합니다. 상석이 따로 없고 하나 하나의 자리가 다 상석입니다. 이 움직이는 학교에 참여하는 사람은 자신이 진정으로 존중과 아낌을 받고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며, 따라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마음과 정성을 다해 참여하는 것입니다.
윤선생님, 저는 요즈음 한겨레 문화센터의 강좌에 나가곤 합니다만, 그 곳의 교실은 모든 학생이 칠판 쪽을 바라보고 앉고 선생은 학생을 향해 일방통행 식의 강의를 하는 구태의연한 방식을 답습하고 있더군요. 교실의 크기에 비해 청강생 수가 너무 많으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경우는 있겠지요. 하지만 애당초부터 민주시민을 위한 교육의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만 같아 유감스러웠습니다. 그것이 한겨레신문사에서 주관하는 교육 프로그램이어서 더욱 그러했습니다.
저는 미국 펜들 힐에서 받았던 강의들과 작년부터 '집중강의'라는 형식으로 가르치게 된 일본 동경 모 대학에서의 강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교사와 학생 사이에 '경청'의 정신이 살아 있고, 그래서 '서로 가르치고 서로 배우는' 관계가 형성되면, 창조적 기쁨이 넘치는 가운데 강의는 살아 숨쉬고 깊이를 더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비록 현재의 주어진 여건 속에서도 우리가 정신과 방법을 바꾸기만 하면, 지금 당장 거둘 수 있는 교육의 효과는 결코 적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이 학교의 커리큘럼에 관해서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식탁교제(a table fellowship)입니다. 이 학교에서는 밥을 먹는 일과 학교의 교육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설사 공부를 좀 덜 하는 일이 있더라도 음식을 만드는 과정과 식사와 식사 후의 설거지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참가자 전원이 함께 합니다. 이 과정 자체가 이 학교 교육의 한 중요한 부분이 됩니다. 식사준비에 소요되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서로 정다운 대화를 나누며 요리법도 익히면서 즐겁게 음식을 만듭니다. 음식이 다 되면 둥그렇게 둘러앉아 서로 손을 잡고 잠시 묵상한 후에 담소하며 즐겁고 느긋하게 식사를 합니다.
다음은 '살아온 이야기' 나누기입니다. 누가 먼저 이야기를 하는가는 각자의 자발성에 맡깁니다. 하고 싶은 기분이 들 때까지 자기가 이야기하는 차례를 뒤로 미루어도 좋습니다. 한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겸허한 자세로 진지하게 귀를 기울입니다. 혹 어떤 이는, "나는 별로 이야기할 거리가 없어요."라며 주저할 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는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고 준비된 사람이 먼저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참가자들이 종이를 한 장씩 나누어 받아 자신의 일생을 5년 단위 또는 10년 단위로 쪼개어, 예를 들면 태어나서부터 9살까지, 10살부터 19살까지, 20살부터 29살까지, 30살부터 39살까지---라는 식으로 나누고 그 각 단위에 일어났던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나 에피소드, 주요한 사건을 간략하게 기록합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 또는 둘을 택해 이야기를 합니다. 이야기가 한 바퀴 빙 돌아 다시 자기 차례가 돌아오면 이번에는 다른 단위를 택해 이야기를 하고 이렇게 계속 진행됩니다.
처음에는 수줍어하거나 주저했던 사람도 이야기를 경청해 주는 사람들의 진지함에 이끌리고 점차 무르익는 분위기에 젖어들면서 이야기 꾸러미를 풀기 시작합니다. 마음을 열고 깊이 귀 기울여 경청하는 사람들은 이야기가 절절한 대목에 이를 때면 한숨을 짖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어떤 이는 가만히 묵상 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기쁘고 즐거운 대목에서는 미소짓거나 폭소를 터뜨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참가자들은 서로를 알고 서로 친숙해지게 됩니다.
살아온 이야기 나눔은 움직이는 학교의 커리큘럼 가운데서도 맨 첫머리를 차지할 만큼 중요합니다. 이 과정이 깊이 있게 훌륭히 이뤄지면 그 뒤를 잇는 과정들은 훨씬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움직이는 학교는 '꼭 읽어야 할 책들'과 '읽어두면 좋을 책들'의 목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이 책들의 선택은 움직이는 학교에 참여하는 사람들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선은 편의상, 이 학교를 먼저 구상한 사람이 각각 10권씩의 책을 선정하여 일정한 기간 시험적으로 사용해보자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아래에 그 중 몇 권을 소개해 보지요.
움직이는 학교에 적합한 우리말로 된 좋은 책을 고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움직이는 학교에 참여하게 될 수많은 분들이 더 좋은 책으로 이 목록을 채울 것입니다.
움직이는 학교는 고정된 교과서를 가지지 않습니다. 위의 책들은 우리들의 생각을 자극하고 대화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한 일종의 촉매제로서 사용될 것입니다. 번역서의 경우에는 내용도 좋고 읽기 쉬운 좋은 번역을 선택했습니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두 책은 곧 번역에 착수할 생각입니다.
한권의 책을 가운데 놓고 둘러 앉아 서로 생각과 느낌을 나누는 사람들은 서로를 더욱 더 깊고 따뜻하게 느끼고 서로 간에 개성과 다름이 있음을 알고 존중하며 이해와 우의를 돈독하게 합니다. 단순히 '읽는다'를 넘어서 책 속의 그 무엇에 깊이 귀기울여 듣고, 그것과 더불어 느끼고 생각하고 묵상하며 드디어는 그 책의 속내를 꿰뚫어야 합니다. 이것이 움직이는 학교의 책 읽기 방식입니다.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대목이나 단락을 소개하고 다같이 돌아가면서 읽고 서로의 경험 나누기를 통해 다름의 의미와 보다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마음공부로서 '거룩한 책읽기'는 나와 우리들 속에 또 하나의 변화의 씨앗을 심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 다음 커리큘럼인 묵상과 기도의 순서로 넘어가지요.
윤선생님께서 두 번이나 '펜들 힐'로 저를 찾아오셔서 직접 확인하신 바대로, 저는 2년 동안 매일 아침 퀘이커의 '고요한 예배'(silent meeting for worship)에 참여함으로써 제 생애에 처음으로 깊은 영적 묵상의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체험은 저의 신앙과 삶에 근본적 변화(transformation)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것을 말로 설명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만, 저의 생활에 일어난 몇 가지 변화를 예로 들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고요히 묵상하는 가운데 삼십분 또는 한시간을 보냅니다. 내 안에 있는 빛(the inner Light)을 마음의 눈으로 응시하면서 깊고 고른 숨을 내쉬고 들이쉽니다. "나는 지금 숨을 쉬고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정신이 맑아지고 한 곳으로 집중되면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맑은 샘이 솟듯이 기쁨이 솟아오릅니다. 이런 상태에서 오늘 만날 사람을 생각합니다. 그분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봅니다. 그 이름을 나의 숨결 위에 놓습니다. 시냇물에 배를 띄우듯이 말입니다. 그런 다음 이번에는 내 작은 숨을 하나님의, 우주의 더 크고 넉넉한 숨 위에 놓습니다. 이런 상태로 한참 숨을 내쉬고 들이쉽니다. "내 숨은 지금 하나님의 숨과 하나가 되어 숨쉬고 있다!" 마음이 평화로워 집니다. 가슴이 따뜻해져 옵니다. 오늘 그 사람과의 만남이 훌륭하고 아름다운 만남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번에는 생각을 구속하지 않고 물 흐르듯 놓아둡니다.(Let it go!) 시냇물 위에 띄운 종이배가 흐르는 물 따라 흘러가듯이 그렇게 흘러가도록 놓아버립니다. 턱 맡겨버립니다. 그리고 쉽니다.(doing nothing)
"움직이는 학교"
-어느 몽상가의 새로운 시작(2)-
윤 숙 선생님!
지난 달 첫 편지에서는 '움직이는 학교'의 목적과 특성, 그리고 커리큘럼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커리큘럼의 넷째 항목인 '명상과 기도'를 소개해 드리다가 그쳤었지요. 움직이는 학교에서 명상하고 기도하는 법에 관해서는 앞으로도 자주 언급하게 될 것이므로 그 정도로 해 두고, 오늘은 커리큘럼의 남은 항목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삶을 기록하기'입니다.
움직이는 학교는 이 학교에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소박한 언어로 기록해 보는 습관을 기르도록 권장합니다. 이것은 앞에서 이미 설명 드렸던 '살아온 이야기 나누기'와 짝을 이루면서 그것과 긴밀히 연결되는 커리큘럼이기도 합니다. 움직이는 학교의 사람들은 자기 인생의 의미 있는 사건이나 쓰라린 실패의 경험, 마음에 품고 있었던(있는) 꿈과 희망, 또는 만나고 헤어졌던 잊을 수 없는 사람(들)에 얽힌 사연, 일화 등등을 처음에는 이야기로, 그 다음에는 글로 옮겨보는 연습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평소 글 쓰기 습관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대단히 어렵고 힘든 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아, 난 죽었다 깨어나도 못해!"라는 신음에 가까운 반응이 나올 지도 모릅니다. 만약에 어느 한 모임에서 이런 분들이 대다수를 이루는 경우에는, 커리큘럼의 이 항목은 당분간 보류해 두었다가 세월이 좀 흐른 후에 차츰차츰 시도해 보는 것도 무방하겠지요.
그러나 실은 '방법' 만 좋다면,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것이 반드시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우선 한 두 단락이라도 써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살아온 이야기'가 없다면 모르지만 '이야기 나누기' 시간에 이미 했던 이야기가 있으니까 그 중에 어느 대목을 택해서 이번에는 그것을 글로 옮기는 것뿐입니다.
유의할 점은 잘 쓰려는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저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담담하게 적어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쓴 글이 문필가의 세련된 글보다 더 진실하고 감동적인 글이 될 수 있습니다. 저 겨울철 군고구마 장수가 드럼통에 아무렇게나 써붙인 '군고구마'라는 투박한 글씨가 최고의 명필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윤 선생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저 자신부터가 무엇을 기록하는 데 서투르고 몹시 게으릅니다. 모처럼 떠오른 좋은 생각도 메모를 해두지 않아 놓쳐버리기 일쑤입니다. 기억해 두어야 할 뜻깊은 만남이나 나누었던 대화,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일이나 사건도 어느새 망각 속에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그것은 평소에 기록하는 습관을 기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본에서 살아보니까 일본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기록을 잘 하는 사람들이더군요. 제가 어디에 가서 강의나 설교를 하면, 몇 일이 지나면 거의 예외 없이 두서너 사람으로부터 감사의 말이나 감상을 적은 편지를 받고는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글씨도 잘 쓰거니와 문장력도 매우 훌륭했습니다. 글 쓰기를 생활화하고 있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참 부러웠어요.
또 내가 사귀었던 미국 사람들, 특히 '펜들 힐'에서 만났던 퀘이커 분들은 어찌나 글 쓰기를 좋아하고 기록하는 습관이 몸에 착 배어있는지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저널링 붘'(journaling book)이라고 부르는, 특별히 신앙적 삶을 기록하기 위한 공책을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수시로 생각과 명상의 내용을 기록합니다. 간혹 작은 웤샾 모임 등에서 그 공책에 써둔 것을 낭독해 들려주는 때가 있습니다. 그걸 들어보면, 자기네 모국어를 얼마나 깊이 소화하고 있고, 정확하고 아름답게 구사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지를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남들을 부러워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다. 우리도 시작하자!"
윤 선생님, 움직이는 학교는 열 명 단위의 지극히 작은 모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저는 민들레 꽃씨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 온 들녘에 뿌려지듯이 움직이는 학교도 그렇게 널리 널리 퍼져나갈 것이라고 상상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새로운 생활 운동으로서, 새로운 신앙 운동, 산 교육 운동으로서, 움직이는 학교는 꿈의 꽃씨를 뿌리고 또 뿌릴 것입니다. 그리 하여 이 운동에 참여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차츰 차츰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습관을 몸에 익히게 될 것입니다.
'삶의 이야기 기록하기'는 내 인생에 어떤 의미 있는 효과를 가져다주는 것일까요? 저 자신의 경험에서 말씀드린다면, 자기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을 기록해 보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 부분에 새로운 빛을 조명하게 됩니다.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였는가? 그리고 지금은 누구인가? 왜 나는 지금 이 '움직이는 학교'에 참여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무엇에 목마른가? 장차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가?................... 생활에 쫓기느라 망각해버렸던 이런 물음들이 묵은 상처가 되살아나듯 소생합니다. 이것은 아픔과 함께 기쁨도 동반하는 각성의 과정입니다. 움직이는 학교에서 음식을 나누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기록하고, 기록한 것을 다시 서로 나누는 가운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묵은 상처가 아물고, 새로운 자아가 눈떠 일어나며, 성숙을 향한 새 발돋움이 시작됩니다. 다른 이가 쓴 '내 인생의 이야기' 속에서 나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기도 하고, 내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하고는 무척이나 다르구나! 라는 자아의 성찰을 얻게도 됩니다. 옛 자기와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송가'의 스쿠리지 영감처럼 사후(死後)의 나를 만나 오늘의 내가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움직이는 학교의 '삶의 이야기 기록하기'는 적어도 이런 놀라운 경험들의 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과정은 실제로 참가자 모두에게 하나의 좋은 '영성 공부'(a study of spirituality)의 장을 제공합니다.
움직이는 학교에는 어떤 특정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들도 참가할 수 있습니다만, 그런 분들은 순전히 물질적인 잣대 만으로서는 가늠해 볼 수 없는 그분들 자신의 삶의 영적 차원(spiritual depths)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움직이는 학교는 '영성의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영성'(spirituality)라는 말에 낯선 분들은 '생명의 학교'라고 불러도 좋겠지요. '영'(spirit)이란 '생명'(life)과 결국은 같은 말이니까요.
사람은 진실로 '영적 존재'입니다. 사람에게서 '영'이 빠져나가 버리면 그 사람은 생명이 끊긴 유기물의 덩어리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방 한 구석에 버려져 있는 피리는 연주자의 손에 들려있는 피리와는 질적으로 다른 피리입니다. 연주자의 입으로부터 숨이 불어넣어지고 손가락이 움직여져 아름다운 소리를 낼 때 비로소 피리는 살아있는 피리로서 소생하는 것입니다. 움직이는 학교의 사람들도 숨(spirit)이 불어넣어져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산 피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움직이는 학교의 커리큘럼에는 그밖에도 '평화 공부', '갈등 및 분쟁의 평화로운 해결방법 공부', '가난한 나라들과 그곳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 관한 공부', '선주민들(native peoples)과 차별받는 사람들과 민족(ethnic)집단들에 관한 공부', 그 밖에 '호홉법', '축제' 등등이 있습니다. 그 하나 하나의 설명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축제'에 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움직이는 학교는 생활 속에 웃음과 낭만, 춤과 노래가 어우러지는 공동체가 되고자 노력합니다. 한마디로 '축제(festival)가 있는 공동체'를 가꾸려는 것입니다. 그런 준비 과정으로서 적어도 한해에 두 번 '축제'를 엽니다. 한번은 우리네 식구들만의 작은 축제로 하고, 다른 한번은 외부 손님들을 초대하는 조금 더 큰 축제로 합니다.
조촐하게 음식을 장만하고 가까운 이웃 사람들과 지역주민 가운데 움직이는 학교에 관심을 보이는 분들을 초대해 잔치를 합니다. 작은 무대를 꾸미고 노래, 악기연주, 시 낭송, 만담, 옛 이야기, 춤, 연극 등등 평소 생활 속에서 틈틈이 준비해온 레퍼토리를 올립니다.
장차, 움직이는 학교 운동이 발전하여 넓은 지역으로 퍼져나가게 되면, 2-3년에 한번 꼴로 다섯 개 정도의 모임이 합동하여 보다 큰 규모의 축제를 열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움직이는 학교의 축제는 아마츄어 정신을 존중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삶의 이야기 기록하기'가 그런 것처럼, 축제 때에 무대에 올려지는 하나 하나의 작품은 그야말로 군고구마 장수의 글씨처럼 질박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움직이는 학교' 사람들의 풋풋한 생명력을 기운차게 드러내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윤숙 선생님, 오늘은 이쯤에서 얘기를 잘라야 할까 봅니다.
아침에 우연히 씨엔엔(CNN) 방송을 켰더니 윤 선생님이 살고 계시는 미국 노쓰 캐롤라이너 주(洲)에 많은 눈이 내렸다고 보도하면서 그곳의 아름다운 설경을 보여주더군요. 윤선생님과 백선생님이 몹시도 기뻐하시는 모습이 눈꽃 송이들을 배경으로 선연히 눈에 다가왔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추신: 윤선생님도 잘 아시는 판화가 이철수님이 인사동 학고재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그분의 그림 말이 좋아서 여기 첨부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면 언젠가 사람들이 길이라고 부르겠지."
Interview
움직이는 학교 박성준 선생
김문음(작가)
김문음: 호칭을 뭐라고 붙이면 좋을까요?
박성준: 그냥 '씨'가 어떨까요?
무슨 위원장님, 회장님, 이사장님, 사무총장님, 박사님, 교수님 등 호칭의 홍수 속에서 가끔은 이렇게 한마디로 규정짓기 어려운 이들을 만난다. 인터뷰가 진행된 양천구 신정동 아파트 거실. 직접 차를 내오는 선생님의 인상이 무척이나 차분하다.
특이한 이력
김: 박성준 선생님 이력을 보면,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릿쿄오(立敎)대학 신학박사..., 그런데요, 감옥엔 왜 이렇게 오래 계셨어요?
박: 함석헌의 표현을 빌면, 하나님의 발꿈치에 채여서랄까...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이지요. 한편으론 우리의 역사 속에서, 한반도의 운명이 감옥에 쉽게 갈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도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까지 쓸 필요가 있을까요? 기사의 분량이 어느 정도 되나요?
그는 한국전쟁 통에 부모를 잃고 두 살 아래인 동생과 함께 고아가 됐다. 그의 나이 열 살 때였다. 책을 살 돈이 없어, 친구들 교과서를 빌려 헌 종이 묶음에 베껴 쓰면서, 그에겐 무슨 책이든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생겨났다.
대학 시절, 그는 성서를 읽기 시작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고, 경제학도로서 여러 경제학 책을 섭렵했다. 미국 경제학은 사회의 모순을 설명해내지 못했다. '함께 잘 사는 세상', 복음과 사회과학을 결합시키는 대안을 모색하던 그는, 당시 금서였던 마르크스의 경제학을 읽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했고, (어릴 때부터 익힌, '빌린 책을 단숨에 베끼는' 재주를 발휘해) 일어로 된 책들을 번역, 그가 조직한 '경제복지회' 회원들에게 유포했다. 이는 당시, 국가보안법 1조에 해당하는 중죄였다. 그는, 같은 서클 후배였던 한명숙과 결혼한 지 7개월 만에 투옥, 13년 반 동안 옥살이를 했다.
박: 우리 한명숙이가, 나 옥에 있을 때, 한국의 주요 신학교 교과서를 다 보내줬어요. 13년 반 만에 재결합해 태어난 아들이, 이제 고 1입니다.
그 세월의 갈피에 끼인 절절함을 어찌 쉬이 알 수 있겠는가. 현재 부인 한명숙은 여성부 장관이다. 박성준은 출소 후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서남동, 안병무 등과 교류하며 한국 신학연구소 학술부장을 역임하고,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인 '한백교회'를 설립, 8년 동안 목회를 했다.
퀘이커와의 만남
김: 건너뛰어서, 퀘이커 얘기를 해야 할 것 같군요. 저처럼 무지한 사람을 위해서 소개해 주신다면.
박: 퀘이커(The Religious Society of Friends)는 17세기 중엽, 영국에서 일어났지요. 당시, 외적인 종교의식이나 성경의 권위, 공식적인 신조에 중점을 두고 있던 기존 교회에 염증을 느낀 이들은 체험의 종교,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통을 갈구하고 있었는데, 영국에서 이런 이들을 '구하는 자들(seekers)'이라 불렀습니다.
목동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유난히 예민한 감성을 지녔던 조지 폭스(Gorge Fox, 1624∼1689)가 '영적인 여행(spiritual journey)' 끝에 펜들 힐(Pendle Hill)이라는 작은 산정에서 진리를 깨닫고 환상(vision)을 보았는데 이것이 퀘이커의 시초입니다.
김: 그가 깨달은 것이 무엇이었나요?
박: 그가 들었던 소리는 "오직 한 분, 그리스도 예수가 계시니, 그는 너의 처지에 맞게 말씀하신다(There is one, even Christ Jesus, that can speak to thy condition)."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시의 인습적인 신조들(creeds)과 날카롭게 충돌하는 것이었지요. 퀘이커들은 "각 사람 속에 빛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하나님의 그것을 지니고 있다.(There is that of God in everyone)." 이것이 퀘이커 신앙의 정수(精髓)죠.
김: 놀랍게도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사상과 통하는군요.
박: 19세기 말엽 한반도에 출현한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와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의 '사람은 한울님의 신령한 본성을 모시고 있는 존엄한 존재'라는 동학의 핵심은, 지금까지 저 밖에 있는 신(God without)을 향해 놓았던 제상(祭床)과 위패(位牌)를 나를 향해(向我) 돌려놓도록 하는 새로운 제사법을 창안했습니다. 이는 훗날 강증산의 사상과 실천, 함석헌의 씨알 사상과도 연결되지요(함석헌은 1970년대 초, 미국 필라델피아 근교의 펜들 힐에서 퀘이커 회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민중신학의 창시자격인 서남동과 안병무에게 미친 씨알 사상의 영향을 생각할 때, 퀘이커 신앙과 민중신학의 만남은 일찍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흐름은, 지금도 우리에게 호소력이 있습니다. 민중신학이, 민중의 '한(恨)'과 더불어 민중 한 사람 한 사람 속의 '빛' 퀘이커들은 이것을 '영', '그리스도', '씨앗' 등의 이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에 주목할 수 있다면, 그 민중을 21세기의 새로운 세계와 역사 창조의 중심에 세우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 박선생님께서도 펜실베니아주 퀘이커 학교 공동체 '펜들 힐'에 가서 직접 생활하셨지요?
박: 94년, 처음으로 여권이 나온 후 3년 간 일본에 가서 공부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본에서「크리스천을 찾아서」라는 글을 연재하면서,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참다운 크리스천을 만나고 다닌 것이 준비 단계였던 것 같습니다. 맑시스트 크리스천으로서, 저를 보완할 수 있는 영적 눈이 필요했지요. 그리고 나서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유니온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처음엔 일주일 코스로 펜들 힐 영성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후에 결국 2년 동안 거주하며 주로 '평화'를 주제로 공부하였습니다.
예언자적 경청의 힘
김: 펜들 힐에선 무엇을 발견하셨는지요?
박: '경청의 힘'이지요. 우리는 말하는 데 익숙해 있지, 자신이나 남을 잘 듣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언자적 말하기(prophetic speaking)'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예언자적 듣기(prophetic listening)입니다. 말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설교하고 가르치는 자신은 바뀌지 않지요.
'경청'은 수동적인 것이 아닙니다. 훨씬 강력한 것이라는 게 제 경험이에요. '각 사람 속에 빛이 있다'는 것이 뿌리가 되어, 각 사람의 말을, 마음을 듣는 것 - 새벽 여명처럼 존재하는 자신과 상대방의 씨앗을 일깨우는 '경청'에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김: 그렇다면 선생님께선 기존의 설교 중심의 예배 방식에도 이의를 제기하시겠군요.
박: 그렇습니다. 예배에서 말과 소리를 좀 줄이고, 고요한 시간과 공간을 내어 예배의 주체인 각 사람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면 그 여백을 타고 하나님의 영이 들어오시리라 생각합니다.
김: 경청에도 훈련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박: 예컨대 틱 낫한 스님은 '숨쉬기'를 수련하라고 권합니다.
그는 베트남 출신인 틱 냣한 스님의 'mindfulness'란 사상으로부터 '경청'(mindful listening)이라는 중심 개념을 얻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mindfulness'란 보름달처럼 어느 한군데 이지러짐이 없이 따뜻한 마음으로 깨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경청은 그런 마음의 상태로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이다.
" '깨어 있는 가득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숨쉬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숨쉬기는 마음이 흩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숨쉬기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그리고 삶과 깨어 있는 의식 사이를 다리 놓아 줍니다. 언제라도 마음이 산만해질 때면, 그대의 숨을 사용해서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숨을 다스리는 것은 몸과 마음을 그대 자신의 통제 아래 두는 것입니다."
"어느 때라도 가만히 앉아서 명상하고 싶으면, 즉시 그대의 숨을 먼저 관찰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십시오. 처음에는 정상적인 숨을 쉬다가 차츰 숨을 길고 느리게 하여 숨결이 곱고 잔잔해지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숨의 길이는 꽤 길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숨을 의식하고 있는 상태가 'mindfulness(깨어 있는 가득한 마음)'의 상태라 하겠습니다. 펜들 힐에 있는 동안 저도 매일 아침 '고요한 예배'에서 '깨어 있는 가득한 마음'을 터득하게 되었는데, 저는 이것을 '따뜻한 의식'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체험이 저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지금도 매일 아침 묵상 가운데, 내 안에 있는 빛을 마음의 눈으로 응시하며 깊고 고른 숨을 길게 내쉬고 들이쉽니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 숨을 쉬고 있다."라고 생각하지요.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맑은 샘이 솟듯이 기쁨이 솟아오릅니다.
움직이는 학교
김: '따뜻한 의식'은 '사회 문제에 대해 민감해지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요?
박: 예전엔 운동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의식화'를 위해 많이 노력했죠. '의식화'도 중요하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깨어 있었던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이 두 가지가 하나가 된 '따뜻한 의식'으로 사회적 행동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 펜들 힐에서 돌아오실 땐 보람이 있으셨겠어요. 5년 반 만의 귀국이셨다죠?
박: 예. 저는 '선물'을 준비해 갖고 온다는 생각에 무척 기뻤습니다. 81년, 크리스마스날 새벽, 13년 반 만에 감옥에서 돌아오던 때보다 더 큰 기쁨과 희망에 찬 귀향이었습니다. 그것은 '움직이는 학교'라는 제 새로운 꿈(vision) 때문이었습니다.
김: '움직이는' 학교요?
박: 예. 움직이는 학교는 위치가 없습니다. 고정된 건물이나 학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움직이는 학교는 사람과 사람이 상대방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가지고 마치 처음이듯 새롭게 다시 만나는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드웨어'가 아니고 '소프트웨어'지요.
그의 부연에 의하면, 열 명에서 열다섯 명 이내의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서로의 이야기에 깊이 귀를 기울이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모임을 갖는다. '움직이는 학교'에선 한 사람이 너무 길게 말하거나 이야기를 독점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 둘러앉은 순서대로 돌아가며 누구나 이야기에 참여한다. 남이 이야기할 때 잘 듣지 않고 자기 생각에 잠기거나 상대방의 이야기 속의 허점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자기를 온전히 내맡겨서 남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통째로 듣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한 바퀴, 또 한 바퀴, 각자 1분 정도씩 말을 한다. 이야기할 준비가 미처 안 됐다고 느끼거나 혹시라도 말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말없는 손짓으로 옆 사람에게 말할 기회를 넘겨 주면 된다.
상대방의 말을 분석 비판하면서 듣고 허점을 발견하여 논박하는 문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통째로 듣기'가 실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만, 연습이 거듭되면서 조금씩 더 잘 들을 수 있게 된다. 이야기가 돌아가며 무르익어 간다.
한 사람의 진솔한 이야기가 다른 사람 속에 잠자던 이야기를 일깨우는 실마리가 되고 상대의 진실이 나의 심금에 부딪쳐 와 내 소리를 울려낸다. 개성과 차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공감의 깊이가 더해지며, 나와 너의 진실이 맞닿고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며 해답이 주어진다.
김: 하나의 운동인 셈이군요.
박: 브랜드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이 학교의 정신적 푯대가 되는 원리는 물론 '경청'입니다. 나의 존재의 가장 깊은 곳을 열어놓고 하나님에게, 자연에게, 사람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고요히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 학교에는 선생과 학생이라는 이분법적 분리가 없습니다. 모두가 선생이고 학생이라고나 할까요. 이 선물을 받게 되는 이에게는 복이 있습니다.
김: 예수님이야말로 움직이는 학교 선생님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 동안 개교를 많이 하셨나요?
박: 소리없이 퍼져가고 있지요. 움직이는 학교도 끊임없이 변해가야 합니다. 끝없이 배우고, 끝없이 비우고 가득 차고... 방법론 자체도 변해갈 겁니다.
김: 최근 우리 모두를 걱정시키고 있는 세계의 테러리즘에 대한 대안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박: 인류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와 질병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문제 자체를 공격하는 방법이 아닌, 평화의 방법이 필요합니다. 미국이 국제 테러리스트의 행동을 통제하려면, 먼저, 또는 적어도 동시에 미국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래 전 간디옹은 이렇게 놀라운 통찰의 말을 했지요. "예전에는 꿈도 못 꿨던 일들이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고 불가능했던 일들이 가능해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폭력'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새 발견에 끊임없이 놀라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비폭력'의 영역에서 이루어질 더 놀라운 발견들, 예전에는 꿈조차 꿀 수 없었고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고 믿을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꿈 꾸라
그는 2001년 봄 학기부터 성공회 대학 NGO대학원에서 평화학을 강의하고 있다.
박: 마음과 정성을 다해 우리가 서로 경청한다면, 우리는 서로의 '지하수'를 뿜어 올릴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 '마중물'이요? 처음 들어요. 참 아름다운 단어네요.
박: 개인의 우물 하나 하나는 우리가 다 갖고 있는 기반이죠. 그 뒤에는 더 큰 하나님의 영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김: 말씀 나누다 보니까, 감옥에 계셨든, 외유를 하셨든, 선생님께서는 삶의 정수(精髓)만을 찾아다니는, 진짜 욕심쟁이같군요.
그가 환하게 웃었다. 대책 없어 보이던 첫 모습은, 공생(共生)의 삶을 끝없이 궁리하고 꿈꾸는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어 보였다. 헤어지기 직전이 되어서야, 오늘 나는 박성준 선생님이 주재하는 '움직이는 학교'의 1人 학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만치... 새로운 문이 열리고, 하얀 빛이 느껴졌다.
그간 안녕하신지요?
한국에 돌아온 지 석 달이나 지난 이제야 소식을 전하게 되어 죄송한 마음으로 펜을 듭니다. 부디 넓은 아량으로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
윤선생님, 이번 5년 반만의 저의 귀국은, 저 1981년 크리스마스 날 새벽 13년 6개월만에 감옥에서 석방되어 돌아오던 때 보다 더 큰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 찬 귀향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제 손이 빈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좋은 '선물'을 한아름 안고 돌아 왔거든요. 무슨 선물이었느냐 고요? 정직하게 대답하지요. 그 선물이란 바로 '움직이는 학교'라는 저의 새로운 꿈(vision)입니다.
그럼 이제 차근차근 이 학교--'학교'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21세기의 새로운 형태의 '교회'라고 해도 무방하겠지요--에 관한 저의 구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움직이는 학교'는 위치가 없습니다. 즉 한 곳에 고정된 건물이나 교실을 갖지 아니합니다. 이 학교는 제 자리에서 학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학생을 찾아 나섭니다. 학생이 먼 곳에 있으면 멀리 여행합니다. 그래서 움직이는 학교입니다.
이 학교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우선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안에 하나님을 모신 존엄한 존재임을 자각할 수 있도록 서로 돕는 데 있습니다. 각 사람이 자주적 인격의 주체로서 일어서서 당당히 걸어갈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고 서로 가르치고 배웁니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과 사회와 인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책임 있는 존재가 되자는 것입니다.
이 학교의 정신적 푯대가 되는 원리(principle)는 '경청'(敬聽)입니다. 경청이란 "겸허하게 정성을 다해 귀를 기울여 듣는 것"(mindful listening)을 말합니다. 나의 존재의 가장 깊은 곳을 열어 놓고 하나님에게, 자연에게, 사람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고요히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움직이는 학교에서 사람들 상호간의 관계는 일방이 타방을 가르치는 관계가 아닙니다. 자신의 계획이나 용건, 남을 가르치고자 하는 의도, 판단이나 충고 따위를 완전히 접어놓고 오로지 상대방에게 전적으로 나를 내맡기는 방법으로 고요히 귀를 기울이는 그러한 관계입니다.
이 학교에서는 선생과 학생 사이에 이분법적인 분리가 없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 되고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이 됩니다. 서로 배우고 서로 가르치는 관계이지요. 모두가 선생이고 모두가 학생이라고나 할까요. '선생'이라는 말 대신에 '일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주선하고 돕는 이'라는 뜻의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라는 영어 어휘에 해당하는 우리말이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도우미'라는 말이 아름다운 우리말로 자리잡았듯이 차차 그런 말을 만들어 정착시켜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이 학교에서는 '선생'이라는 말의 참된 의미는 '잘 경청하는 이'(a good listener)라는 것입니다.
선생(='잘 경청하는 이')은 학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을 찾아 때로는 먼 곳을 여행합니다. 현재의 삶의 방식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 새 삶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그를 찾아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나 사회 현실에 대해 고민하는 이, 뭔가 대안이 될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사회, 새 세상을 갈망하는 이, 이를 위한 새로운 지식과 통찰에 목마른 이, 이런 분을 찾아뵙고 말씀을 경청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학교는 '길 위의 학교'(a school on the road)입니다.
이 학교는 교실이 하나 뿐인 학교입니다. 이 학교의 학생 수는 열 명 이내로 제한합니다. 열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방이 하나 있으면 당장에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학교는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비용이 덜 드는 가장 값싼 학교입니다.
교실 안의 좌석은 열 명이 빙 둘러앉도록 원형으로 배치합니다. 상석이 따로 없고 하나 하나의 자리가 다 상석입니다. 이 움직이는 학교에 참여하는 사람은 자신이 진정으로 존중과 아낌을 받고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며, 따라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마음과 정성을 다해 참여하는 것입니다.
윤선생님, 저는 요즈음 한겨레 문화센터의 강좌에 나가곤 합니다만, 그 곳의 교실은 모든 학생이 칠판 쪽을 바라보고 앉고 선생은 학생을 향해 일방통행 식의 강의를 하는 구태의연한 방식을 답습하고 있더군요. 교실의 크기에 비해 청강생 수가 너무 많으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경우는 있겠지요. 하지만 애당초부터 민주시민을 위한 교육의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만 같아 유감스러웠습니다. 그것이 한겨레신문사에서 주관하는 교육 프로그램이어서 더욱 그러했습니다.
저는 미국 펜들 힐에서 받았던 강의들과 작년부터 '집중강의'라는 형식으로 가르치게 된 일본 동경 모 대학에서의 강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교사와 학생 사이에 '경청'의 정신이 살아 있고, 그래서 '서로 가르치고 서로 배우는' 관계가 형성되면, 창조적 기쁨이 넘치는 가운데 강의는 살아 숨쉬고 깊이를 더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비록 현재의 주어진 여건 속에서도 우리가 정신과 방법을 바꾸기만 하면, 지금 당장 거둘 수 있는 교육의 효과는 결코 적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이 학교의 커리큘럼에 관해서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식탁교제(a table fellowship)입니다. 이 학교에서는 밥을 먹는 일과 학교의 교육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설사 공부를 좀 덜 하는 일이 있더라도 음식을 만드는 과정과 식사와 식사 후의 설거지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참가자 전원이 함께 합니다. 이 과정 자체가 이 학교 교육의 한 중요한 부분이 됩니다. 식사준비에 소요되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서로 정다운 대화를 나누며 요리법도 익히면서 즐겁게 음식을 만듭니다. 음식이 다 되면 둥그렇게 둘러앉아 서로 손을 잡고 잠시 묵상한 후에 담소하며 즐겁고 느긋하게 식사를 합니다.
다음은 '살아온 이야기' 나누기입니다. 누가 먼저 이야기를 하는가는 각자의 자발성에 맡깁니다. 하고 싶은 기분이 들 때까지 자기가 이야기하는 차례를 뒤로 미루어도 좋습니다. 한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겸허한 자세로 진지하게 귀를 기울입니다. 혹 어떤 이는, "나는 별로 이야기할 거리가 없어요."라며 주저할 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는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고 준비된 사람이 먼저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참가자들이 종이를 한 장씩 나누어 받아 자신의 일생을 5년 단위 또는 10년 단위로 쪼개어, 예를 들면 태어나서부터 9살까지, 10살부터 19살까지, 20살부터 29살까지, 30살부터 39살까지---라는 식으로 나누고 그 각 단위에 일어났던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나 에피소드, 주요한 사건을 간략하게 기록합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 또는 둘을 택해 이야기를 합니다. 이야기가 한 바퀴 빙 돌아 다시 자기 차례가 돌아오면 이번에는 다른 단위를 택해 이야기를 하고 이렇게 계속 진행됩니다.
처음에는 수줍어하거나 주저했던 사람도 이야기를 경청해 주는 사람들의 진지함에 이끌리고 점차 무르익는 분위기에 젖어들면서 이야기 꾸러미를 풀기 시작합니다. 마음을 열고 깊이 귀 기울여 경청하는 사람들은 이야기가 절절한 대목에 이를 때면 한숨을 짖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어떤 이는 가만히 묵상 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기쁘고 즐거운 대목에서는 미소짓거나 폭소를 터뜨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참가자들은 서로를 알고 서로 친숙해지게 됩니다.
살아온 이야기 나눔은 움직이는 학교의 커리큘럼 가운데서도 맨 첫머리를 차지할 만큼 중요합니다. 이 과정이 깊이 있게 훌륭히 이뤄지면 그 뒤를 잇는 과정들은 훨씬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움직이는 학교는 '꼭 읽어야 할 책들'과 '읽어두면 좋을 책들'의 목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이 책들의 선택은 움직이는 학교에 참여하는 사람들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선은 편의상, 이 학교를 먼저 구상한 사람이 각각 10권씩의 책을 선정하여 일정한 기간 시험적으로 사용해보자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아래에 그 중 몇 권을 소개해 보지요.
*꼭 읽어야 할 책들:
1)'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김종철/김태언 옮김, 녹색평론사 ('Ancient Futures-learning from Ladakh', Helena Norberg-Hodge, Rider, 1992)
2)'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이석태 옮김, 보리(Loving and Leaving the Good Life, Helen Nearing)
3)'경쟁의 한계', 리스본 그룹 보고서, 채수환 옮김, 바다(Limits to Competition, The Group of Lisbon)
4)'A Testament of Devotion', Thomas Kelly, Harper-Colins, 1992(미번역)
5)'The Miracle of Mindfulness-A Manual on Meditation', Thich Nhat Hanh, Beacon Press, 1975(이현주 옮김, '거기서 그것과 하나 되시게', 나무심는사람)
6) '민통선 평화기행', 이시우 사진과 글, 창작과 비평사, 2003
*읽어두면 좋을 책들:
1)'어두운 승리-신자유주의, 그 파국의 드라마', 월든 벨로, 이윤경 옮김, 삼인(Dark Victory, Walden Bellow, 1994)
2)'NGO-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 박원순, 예담
3)'간디의 물레-에콜로지와 문화에 관한 에세이', 김종철, 녹색평론사
4)'인디언의 지혜', 베어 하트, 형선호 옮김, 황금가지(The Wind Is My Mother, Bear Heart)
5)'전쟁과 사회', 김동춘 지음, 돌베개
1)'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김종철/김태언 옮김, 녹색평론사 ('Ancient Futures-learning from Ladakh', Helena Norberg-Hodge, Rider, 1992)
2)'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이석태 옮김, 보리(Loving and Leaving the Good Life, Helen Nearing)
3)'경쟁의 한계', 리스본 그룹 보고서, 채수환 옮김, 바다(Limits to Competition, The Group of Lisbon)
4)'A Testament of Devotion', Thomas Kelly, Harper-Colins, 1992(미번역)
5)'The Miracle of Mindfulness-A Manual on Meditation', Thich Nhat Hanh, Beacon Press, 1975(이현주 옮김, '거기서 그것과 하나 되시게', 나무심는사람)
6) '민통선 평화기행', 이시우 사진과 글, 창작과 비평사, 2003
*읽어두면 좋을 책들:
1)'어두운 승리-신자유주의, 그 파국의 드라마', 월든 벨로, 이윤경 옮김, 삼인(Dark Victory, Walden Bellow, 1994)
2)'NGO-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 박원순, 예담
3)'간디의 물레-에콜로지와 문화에 관한 에세이', 김종철, 녹색평론사
4)'인디언의 지혜', 베어 하트, 형선호 옮김, 황금가지(The Wind Is My Mother, Bear Heart)
5)'전쟁과 사회', 김동춘 지음, 돌베개
움직이는 학교에 적합한 우리말로 된 좋은 책을 고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움직이는 학교에 참여하게 될 수많은 분들이 더 좋은 책으로 이 목록을 채울 것입니다.
움직이는 학교는 고정된 교과서를 가지지 않습니다. 위의 책들은 우리들의 생각을 자극하고 대화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한 일종의 촉매제로서 사용될 것입니다. 번역서의 경우에는 내용도 좋고 읽기 쉬운 좋은 번역을 선택했습니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두 책은 곧 번역에 착수할 생각입니다.
한권의 책을 가운데 놓고 둘러 앉아 서로 생각과 느낌을 나누는 사람들은 서로를 더욱 더 깊고 따뜻하게 느끼고 서로 간에 개성과 다름이 있음을 알고 존중하며 이해와 우의를 돈독하게 합니다. 단순히 '읽는다'를 넘어서 책 속의 그 무엇에 깊이 귀기울여 듣고, 그것과 더불어 느끼고 생각하고 묵상하며 드디어는 그 책의 속내를 꿰뚫어야 합니다. 이것이 움직이는 학교의 책 읽기 방식입니다.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대목이나 단락을 소개하고 다같이 돌아가면서 읽고 서로의 경험 나누기를 통해 다름의 의미와 보다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마음공부로서 '거룩한 책읽기'는 나와 우리들 속에 또 하나의 변화의 씨앗을 심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 다음 커리큘럼인 묵상과 기도의 순서로 넘어가지요.
윤선생님께서 두 번이나 '펜들 힐'로 저를 찾아오셔서 직접 확인하신 바대로, 저는 2년 동안 매일 아침 퀘이커의 '고요한 예배'(silent meeting for worship)에 참여함으로써 제 생애에 처음으로 깊은 영적 묵상의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체험은 저의 신앙과 삶에 근본적 변화(transformation)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것을 말로 설명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만, 저의 생활에 일어난 몇 가지 변화를 예로 들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고요히 묵상하는 가운데 삼십분 또는 한시간을 보냅니다. 내 안에 있는 빛(the inner Light)을 마음의 눈으로 응시하면서 깊고 고른 숨을 내쉬고 들이쉽니다. "나는 지금 숨을 쉬고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정신이 맑아지고 한 곳으로 집중되면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맑은 샘이 솟듯이 기쁨이 솟아오릅니다. 이런 상태에서 오늘 만날 사람을 생각합니다. 그분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봅니다. 그 이름을 나의 숨결 위에 놓습니다. 시냇물에 배를 띄우듯이 말입니다. 그런 다음 이번에는 내 작은 숨을 하나님의, 우주의 더 크고 넉넉한 숨 위에 놓습니다. 이런 상태로 한참 숨을 내쉬고 들이쉽니다. "내 숨은 지금 하나님의 숨과 하나가 되어 숨쉬고 있다!" 마음이 평화로워 집니다. 가슴이 따뜻해져 옵니다. 오늘 그 사람과의 만남이 훌륭하고 아름다운 만남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번에는 생각을 구속하지 않고 물 흐르듯 놓아둡니다.(Let it go!) 시냇물 위에 띄운 종이배가 흐르는 물 따라 흘러가듯이 그렇게 흘러가도록 놓아버립니다. 턱 맡겨버립니다. 그리고 쉽니다.(doing nothing)
"움직이는 학교"
-어느 몽상가의 새로운 시작(2)-
윤 숙 선생님!
지난 달 첫 편지에서는 '움직이는 학교'의 목적과 특성, 그리고 커리큘럼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커리큘럼의 넷째 항목인 '명상과 기도'를 소개해 드리다가 그쳤었지요. 움직이는 학교에서 명상하고 기도하는 법에 관해서는 앞으로도 자주 언급하게 될 것이므로 그 정도로 해 두고, 오늘은 커리큘럼의 남은 항목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삶을 기록하기'입니다.
움직이는 학교는 이 학교에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소박한 언어로 기록해 보는 습관을 기르도록 권장합니다. 이것은 앞에서 이미 설명 드렸던 '살아온 이야기 나누기'와 짝을 이루면서 그것과 긴밀히 연결되는 커리큘럼이기도 합니다. 움직이는 학교의 사람들은 자기 인생의 의미 있는 사건이나 쓰라린 실패의 경험, 마음에 품고 있었던(있는) 꿈과 희망, 또는 만나고 헤어졌던 잊을 수 없는 사람(들)에 얽힌 사연, 일화 등등을 처음에는 이야기로, 그 다음에는 글로 옮겨보는 연습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평소 글 쓰기 습관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대단히 어렵고 힘든 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아, 난 죽었다 깨어나도 못해!"라는 신음에 가까운 반응이 나올 지도 모릅니다. 만약에 어느 한 모임에서 이런 분들이 대다수를 이루는 경우에는, 커리큘럼의 이 항목은 당분간 보류해 두었다가 세월이 좀 흐른 후에 차츰차츰 시도해 보는 것도 무방하겠지요.
그러나 실은 '방법' 만 좋다면,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것이 반드시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우선 한 두 단락이라도 써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살아온 이야기'가 없다면 모르지만 '이야기 나누기' 시간에 이미 했던 이야기가 있으니까 그 중에 어느 대목을 택해서 이번에는 그것을 글로 옮기는 것뿐입니다.
유의할 점은 잘 쓰려는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저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담담하게 적어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쓴 글이 문필가의 세련된 글보다 더 진실하고 감동적인 글이 될 수 있습니다. 저 겨울철 군고구마 장수가 드럼통에 아무렇게나 써붙인 '군고구마'라는 투박한 글씨가 최고의 명필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윤 선생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저 자신부터가 무엇을 기록하는 데 서투르고 몹시 게으릅니다. 모처럼 떠오른 좋은 생각도 메모를 해두지 않아 놓쳐버리기 일쑤입니다. 기억해 두어야 할 뜻깊은 만남이나 나누었던 대화,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일이나 사건도 어느새 망각 속에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그것은 평소에 기록하는 습관을 기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본에서 살아보니까 일본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기록을 잘 하는 사람들이더군요. 제가 어디에 가서 강의나 설교를 하면, 몇 일이 지나면 거의 예외 없이 두서너 사람으로부터 감사의 말이나 감상을 적은 편지를 받고는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글씨도 잘 쓰거니와 문장력도 매우 훌륭했습니다. 글 쓰기를 생활화하고 있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참 부러웠어요.
또 내가 사귀었던 미국 사람들, 특히 '펜들 힐'에서 만났던 퀘이커 분들은 어찌나 글 쓰기를 좋아하고 기록하는 습관이 몸에 착 배어있는지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저널링 붘'(journaling book)이라고 부르는, 특별히 신앙적 삶을 기록하기 위한 공책을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수시로 생각과 명상의 내용을 기록합니다. 간혹 작은 웤샾 모임 등에서 그 공책에 써둔 것을 낭독해 들려주는 때가 있습니다. 그걸 들어보면, 자기네 모국어를 얼마나 깊이 소화하고 있고, 정확하고 아름답게 구사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지를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남들을 부러워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다. 우리도 시작하자!"
윤 선생님, 움직이는 학교는 열 명 단위의 지극히 작은 모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저는 민들레 꽃씨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 온 들녘에 뿌려지듯이 움직이는 학교도 그렇게 널리 널리 퍼져나갈 것이라고 상상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새로운 생활 운동으로서, 새로운 신앙 운동, 산 교육 운동으로서, 움직이는 학교는 꿈의 꽃씨를 뿌리고 또 뿌릴 것입니다. 그리 하여 이 운동에 참여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차츰 차츰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습관을 몸에 익히게 될 것입니다.
'삶의 이야기 기록하기'는 내 인생에 어떤 의미 있는 효과를 가져다주는 것일까요? 저 자신의 경험에서 말씀드린다면, 자기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을 기록해 보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 부분에 새로운 빛을 조명하게 됩니다.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였는가? 그리고 지금은 누구인가? 왜 나는 지금 이 '움직이는 학교'에 참여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무엇에 목마른가? 장차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가?................... 생활에 쫓기느라 망각해버렸던 이런 물음들이 묵은 상처가 되살아나듯 소생합니다. 이것은 아픔과 함께 기쁨도 동반하는 각성의 과정입니다. 움직이는 학교에서 음식을 나누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기록하고, 기록한 것을 다시 서로 나누는 가운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묵은 상처가 아물고, 새로운 자아가 눈떠 일어나며, 성숙을 향한 새 발돋움이 시작됩니다. 다른 이가 쓴 '내 인생의 이야기' 속에서 나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기도 하고, 내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하고는 무척이나 다르구나! 라는 자아의 성찰을 얻게도 됩니다. 옛 자기와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송가'의 스쿠리지 영감처럼 사후(死後)의 나를 만나 오늘의 내가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움직이는 학교의 '삶의 이야기 기록하기'는 적어도 이런 놀라운 경험들의 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과정은 실제로 참가자 모두에게 하나의 좋은 '영성 공부'(a study of spirituality)의 장을 제공합니다.
움직이는 학교에는 어떤 특정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들도 참가할 수 있습니다만, 그런 분들은 순전히 물질적인 잣대 만으로서는 가늠해 볼 수 없는 그분들 자신의 삶의 영적 차원(spiritual depths)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움직이는 학교는 '영성의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영성'(spirituality)라는 말에 낯선 분들은 '생명의 학교'라고 불러도 좋겠지요. '영'(spirit)이란 '생명'(life)과 결국은 같은 말이니까요.
사람은 진실로 '영적 존재'입니다. 사람에게서 '영'이 빠져나가 버리면 그 사람은 생명이 끊긴 유기물의 덩어리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방 한 구석에 버려져 있는 피리는 연주자의 손에 들려있는 피리와는 질적으로 다른 피리입니다. 연주자의 입으로부터 숨이 불어넣어지고 손가락이 움직여져 아름다운 소리를 낼 때 비로소 피리는 살아있는 피리로서 소생하는 것입니다. 움직이는 학교의 사람들도 숨(spirit)이 불어넣어져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산 피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움직이는 학교의 커리큘럼에는 그밖에도 '평화 공부', '갈등 및 분쟁의 평화로운 해결방법 공부', '가난한 나라들과 그곳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 관한 공부', '선주민들(native peoples)과 차별받는 사람들과 민족(ethnic)집단들에 관한 공부', 그 밖에 '호홉법', '축제' 등등이 있습니다. 그 하나 하나의 설명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축제'에 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움직이는 학교는 생활 속에 웃음과 낭만, 춤과 노래가 어우러지는 공동체가 되고자 노력합니다. 한마디로 '축제(festival)가 있는 공동체'를 가꾸려는 것입니다. 그런 준비 과정으로서 적어도 한해에 두 번 '축제'를 엽니다. 한번은 우리네 식구들만의 작은 축제로 하고, 다른 한번은 외부 손님들을 초대하는 조금 더 큰 축제로 합니다.
조촐하게 음식을 장만하고 가까운 이웃 사람들과 지역주민 가운데 움직이는 학교에 관심을 보이는 분들을 초대해 잔치를 합니다. 작은 무대를 꾸미고 노래, 악기연주, 시 낭송, 만담, 옛 이야기, 춤, 연극 등등 평소 생활 속에서 틈틈이 준비해온 레퍼토리를 올립니다.
장차, 움직이는 학교 운동이 발전하여 넓은 지역으로 퍼져나가게 되면, 2-3년에 한번 꼴로 다섯 개 정도의 모임이 합동하여 보다 큰 규모의 축제를 열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움직이는 학교의 축제는 아마츄어 정신을 존중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삶의 이야기 기록하기'가 그런 것처럼, 축제 때에 무대에 올려지는 하나 하나의 작품은 그야말로 군고구마 장수의 글씨처럼 질박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움직이는 학교' 사람들의 풋풋한 생명력을 기운차게 드러내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윤숙 선생님, 오늘은 이쯤에서 얘기를 잘라야 할까 봅니다.
아침에 우연히 씨엔엔(CNN) 방송을 켰더니 윤 선생님이 살고 계시는 미국 노쓰 캐롤라이너 주(洲)에 많은 눈이 내렸다고 보도하면서 그곳의 아름다운 설경을 보여주더군요. 윤선생님과 백선생님이 몹시도 기뻐하시는 모습이 눈꽃 송이들을 배경으로 선연히 눈에 다가왔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추신: 윤선생님도 잘 아시는 판화가 이철수님이 인사동 학고재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그분의 그림 말이 좋아서 여기 첨부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면 언젠가 사람들이 길이라고 부르겠지."
Interview
움직이는 학교 박성준 선생
김문음(작가)
김문음: 호칭을 뭐라고 붙이면 좋을까요?
박성준: 그냥 '씨'가 어떨까요?
무슨 위원장님, 회장님, 이사장님, 사무총장님, 박사님, 교수님 등 호칭의 홍수 속에서 가끔은 이렇게 한마디로 규정짓기 어려운 이들을 만난다. 인터뷰가 진행된 양천구 신정동 아파트 거실. 직접 차를 내오는 선생님의 인상이 무척이나 차분하다.
특이한 이력
김: 박성준 선생님 이력을 보면,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릿쿄오(立敎)대학 신학박사..., 그런데요, 감옥엔 왜 이렇게 오래 계셨어요?
박: 함석헌의 표현을 빌면, 하나님의 발꿈치에 채여서랄까...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이지요. 한편으론 우리의 역사 속에서, 한반도의 운명이 감옥에 쉽게 갈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도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까지 쓸 필요가 있을까요? 기사의 분량이 어느 정도 되나요?
그는 한국전쟁 통에 부모를 잃고 두 살 아래인 동생과 함께 고아가 됐다. 그의 나이 열 살 때였다. 책을 살 돈이 없어, 친구들 교과서를 빌려 헌 종이 묶음에 베껴 쓰면서, 그에겐 무슨 책이든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생겨났다.
대학 시절, 그는 성서를 읽기 시작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고, 경제학도로서 여러 경제학 책을 섭렵했다. 미국 경제학은 사회의 모순을 설명해내지 못했다. '함께 잘 사는 세상', 복음과 사회과학을 결합시키는 대안을 모색하던 그는, 당시 금서였던 마르크스의 경제학을 읽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했고, (어릴 때부터 익힌, '빌린 책을 단숨에 베끼는' 재주를 발휘해) 일어로 된 책들을 번역, 그가 조직한 '경제복지회' 회원들에게 유포했다. 이는 당시, 국가보안법 1조에 해당하는 중죄였다. 그는, 같은 서클 후배였던 한명숙과 결혼한 지 7개월 만에 투옥, 13년 반 동안 옥살이를 했다.
박: 우리 한명숙이가, 나 옥에 있을 때, 한국의 주요 신학교 교과서를 다 보내줬어요. 13년 반 만에 재결합해 태어난 아들이, 이제 고 1입니다.
그 세월의 갈피에 끼인 절절함을 어찌 쉬이 알 수 있겠는가. 현재 부인 한명숙은 여성부 장관이다. 박성준은 출소 후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서남동, 안병무 등과 교류하며 한국 신학연구소 학술부장을 역임하고,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인 '한백교회'를 설립, 8년 동안 목회를 했다.
퀘이커와의 만남
김: 건너뛰어서, 퀘이커 얘기를 해야 할 것 같군요. 저처럼 무지한 사람을 위해서 소개해 주신다면.
박: 퀘이커(The Religious Society of Friends)는 17세기 중엽, 영국에서 일어났지요. 당시, 외적인 종교의식이나 성경의 권위, 공식적인 신조에 중점을 두고 있던 기존 교회에 염증을 느낀 이들은 체험의 종교,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통을 갈구하고 있었는데, 영국에서 이런 이들을 '구하는 자들(seekers)'이라 불렀습니다.
목동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유난히 예민한 감성을 지녔던 조지 폭스(Gorge Fox, 1624∼1689)가 '영적인 여행(spiritual journey)' 끝에 펜들 힐(Pendle Hill)이라는 작은 산정에서 진리를 깨닫고 환상(vision)을 보았는데 이것이 퀘이커의 시초입니다.
김: 그가 깨달은 것이 무엇이었나요?
박: 그가 들었던 소리는 "오직 한 분, 그리스도 예수가 계시니, 그는 너의 처지에 맞게 말씀하신다(There is one, even Christ Jesus, that can speak to thy condition)."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시의 인습적인 신조들(creeds)과 날카롭게 충돌하는 것이었지요. 퀘이커들은 "각 사람 속에 빛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하나님의 그것을 지니고 있다.(There is that of God in everyone)." 이것이 퀘이커 신앙의 정수(精髓)죠.
김: 놀랍게도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사상과 통하는군요.
박: 19세기 말엽 한반도에 출현한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와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의 '사람은 한울님의 신령한 본성을 모시고 있는 존엄한 존재'라는 동학의 핵심은, 지금까지 저 밖에 있는 신(God without)을 향해 놓았던 제상(祭床)과 위패(位牌)를 나를 향해(向我) 돌려놓도록 하는 새로운 제사법을 창안했습니다. 이는 훗날 강증산의 사상과 실천, 함석헌의 씨알 사상과도 연결되지요(함석헌은 1970년대 초, 미국 필라델피아 근교의 펜들 힐에서 퀘이커 회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민중신학의 창시자격인 서남동과 안병무에게 미친 씨알 사상의 영향을 생각할 때, 퀘이커 신앙과 민중신학의 만남은 일찍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흐름은, 지금도 우리에게 호소력이 있습니다. 민중신학이, 민중의 '한(恨)'과 더불어 민중 한 사람 한 사람 속의 '빛' 퀘이커들은 이것을 '영', '그리스도', '씨앗' 등의 이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에 주목할 수 있다면, 그 민중을 21세기의 새로운 세계와 역사 창조의 중심에 세우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 박선생님께서도 펜실베니아주 퀘이커 학교 공동체 '펜들 힐'에 가서 직접 생활하셨지요?
박: 94년, 처음으로 여권이 나온 후 3년 간 일본에 가서 공부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본에서「크리스천을 찾아서」라는 글을 연재하면서,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참다운 크리스천을 만나고 다닌 것이 준비 단계였던 것 같습니다. 맑시스트 크리스천으로서, 저를 보완할 수 있는 영적 눈이 필요했지요. 그리고 나서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유니온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처음엔 일주일 코스로 펜들 힐 영성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후에 결국 2년 동안 거주하며 주로 '평화'를 주제로 공부하였습니다.
예언자적 경청의 힘
김: 펜들 힐에선 무엇을 발견하셨는지요?
박: '경청의 힘'이지요. 우리는 말하는 데 익숙해 있지, 자신이나 남을 잘 듣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언자적 말하기(prophetic speaking)'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예언자적 듣기(prophetic listening)입니다. 말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설교하고 가르치는 자신은 바뀌지 않지요.
'경청'은 수동적인 것이 아닙니다. 훨씬 강력한 것이라는 게 제 경험이에요. '각 사람 속에 빛이 있다'는 것이 뿌리가 되어, 각 사람의 말을, 마음을 듣는 것 - 새벽 여명처럼 존재하는 자신과 상대방의 씨앗을 일깨우는 '경청'에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김: 그렇다면 선생님께선 기존의 설교 중심의 예배 방식에도 이의를 제기하시겠군요.
박: 그렇습니다. 예배에서 말과 소리를 좀 줄이고, 고요한 시간과 공간을 내어 예배의 주체인 각 사람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면 그 여백을 타고 하나님의 영이 들어오시리라 생각합니다.
김: 경청에도 훈련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박: 예컨대 틱 낫한 스님은 '숨쉬기'를 수련하라고 권합니다.
그는 베트남 출신인 틱 냣한 스님의 'mindfulness'란 사상으로부터 '경청'(mindful listening)이라는 중심 개념을 얻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mindfulness'란 보름달처럼 어느 한군데 이지러짐이 없이 따뜻한 마음으로 깨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경청은 그런 마음의 상태로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이다.
" '깨어 있는 가득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숨쉬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숨쉬기는 마음이 흩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숨쉬기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그리고 삶과 깨어 있는 의식 사이를 다리 놓아 줍니다. 언제라도 마음이 산만해질 때면, 그대의 숨을 사용해서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숨을 다스리는 것은 몸과 마음을 그대 자신의 통제 아래 두는 것입니다."
"어느 때라도 가만히 앉아서 명상하고 싶으면, 즉시 그대의 숨을 먼저 관찰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십시오. 처음에는 정상적인 숨을 쉬다가 차츰 숨을 길고 느리게 하여 숨결이 곱고 잔잔해지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숨의 길이는 꽤 길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숨을 의식하고 있는 상태가 'mindfulness(깨어 있는 가득한 마음)'의 상태라 하겠습니다. 펜들 힐에 있는 동안 저도 매일 아침 '고요한 예배'에서 '깨어 있는 가득한 마음'을 터득하게 되었는데, 저는 이것을 '따뜻한 의식'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체험이 저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지금도 매일 아침 묵상 가운데, 내 안에 있는 빛을 마음의 눈으로 응시하며 깊고 고른 숨을 길게 내쉬고 들이쉽니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 숨을 쉬고 있다."라고 생각하지요.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맑은 샘이 솟듯이 기쁨이 솟아오릅니다.
움직이는 학교
김: '따뜻한 의식'은 '사회 문제에 대해 민감해지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요?
박: 예전엔 운동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의식화'를 위해 많이 노력했죠. '의식화'도 중요하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깨어 있었던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이 두 가지가 하나가 된 '따뜻한 의식'으로 사회적 행동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 펜들 힐에서 돌아오실 땐 보람이 있으셨겠어요. 5년 반 만의 귀국이셨다죠?
박: 예. 저는 '선물'을 준비해 갖고 온다는 생각에 무척 기뻤습니다. 81년, 크리스마스날 새벽, 13년 반 만에 감옥에서 돌아오던 때보다 더 큰 기쁨과 희망에 찬 귀향이었습니다. 그것은 '움직이는 학교'라는 제 새로운 꿈(vision) 때문이었습니다.
김: '움직이는' 학교요?
박: 예. 움직이는 학교는 위치가 없습니다. 고정된 건물이나 학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움직이는 학교는 사람과 사람이 상대방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가지고 마치 처음이듯 새롭게 다시 만나는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드웨어'가 아니고 '소프트웨어'지요.
그의 부연에 의하면, 열 명에서 열다섯 명 이내의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서로의 이야기에 깊이 귀를 기울이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모임을 갖는다. '움직이는 학교'에선 한 사람이 너무 길게 말하거나 이야기를 독점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 둘러앉은 순서대로 돌아가며 누구나 이야기에 참여한다. 남이 이야기할 때 잘 듣지 않고 자기 생각에 잠기거나 상대방의 이야기 속의 허점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자기를 온전히 내맡겨서 남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통째로 듣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한 바퀴, 또 한 바퀴, 각자 1분 정도씩 말을 한다. 이야기할 준비가 미처 안 됐다고 느끼거나 혹시라도 말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말없는 손짓으로 옆 사람에게 말할 기회를 넘겨 주면 된다.
상대방의 말을 분석 비판하면서 듣고 허점을 발견하여 논박하는 문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통째로 듣기'가 실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만, 연습이 거듭되면서 조금씩 더 잘 들을 수 있게 된다. 이야기가 돌아가며 무르익어 간다.
한 사람의 진솔한 이야기가 다른 사람 속에 잠자던 이야기를 일깨우는 실마리가 되고 상대의 진실이 나의 심금에 부딪쳐 와 내 소리를 울려낸다. 개성과 차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공감의 깊이가 더해지며, 나와 너의 진실이 맞닿고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며 해답이 주어진다.
김: 하나의 운동인 셈이군요.
박: 브랜드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이 학교의 정신적 푯대가 되는 원리는 물론 '경청'입니다. 나의 존재의 가장 깊은 곳을 열어놓고 하나님에게, 자연에게, 사람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고요히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 학교에는 선생과 학생이라는 이분법적 분리가 없습니다. 모두가 선생이고 학생이라고나 할까요. 이 선물을 받게 되는 이에게는 복이 있습니다.
김: 예수님이야말로 움직이는 학교 선생님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 동안 개교를 많이 하셨나요?
박: 소리없이 퍼져가고 있지요. 움직이는 학교도 끊임없이 변해가야 합니다. 끝없이 배우고, 끝없이 비우고 가득 차고... 방법론 자체도 변해갈 겁니다.
김: 최근 우리 모두를 걱정시키고 있는 세계의 테러리즘에 대한 대안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박: 인류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와 질병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문제 자체를 공격하는 방법이 아닌, 평화의 방법이 필요합니다. 미국이 국제 테러리스트의 행동을 통제하려면, 먼저, 또는 적어도 동시에 미국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래 전 간디옹은 이렇게 놀라운 통찰의 말을 했지요. "예전에는 꿈도 못 꿨던 일들이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고 불가능했던 일들이 가능해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폭력'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새 발견에 끊임없이 놀라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비폭력'의 영역에서 이루어질 더 놀라운 발견들, 예전에는 꿈조차 꿀 수 없었고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고 믿을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꿈 꾸라
그는 2001년 봄 학기부터 성공회 대학 NGO대학원에서 평화학을 강의하고 있다.
박: 마음과 정성을 다해 우리가 서로 경청한다면, 우리는 서로의 '지하수'를 뿜어 올릴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 '마중물'이요? 처음 들어요. 참 아름다운 단어네요.
박: 개인의 우물 하나 하나는 우리가 다 갖고 있는 기반이죠. 그 뒤에는 더 큰 하나님의 영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김: 말씀 나누다 보니까, 감옥에 계셨든, 외유를 하셨든, 선생님께서는 삶의 정수(精髓)만을 찾아다니는, 진짜 욕심쟁이같군요.
그가 환하게 웃었다. 대책 없어 보이던 첫 모습은, 공생(共生)의 삶을 끝없이 궁리하고 꿈꾸는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어 보였다. 헤어지기 직전이 되어서야, 오늘 나는 박성준 선생님이 주재하는 '움직이는 학교'의 1人 학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만치... 새로운 문이 열리고, 하얀 빛이 느껴졌다.
2006/03/28 05:47
2006/03/28 05:47
Posted by 길목




